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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05. 2024

당신은 어머님이야, 나야?

청국장을 사이에 두고

공치사하지 말아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 중에 자주 포함되는 항목이다. 남을 위해 수고한 것을 생색내며 스스로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다.


힘들게 공을 세웠으나 그것을 입에 올려 "나 이거 이거 잘했네~ (그러니 어서 칭찬을 해 주시오.)"라고 입 밖에 내뱉는 순간, 내가 쌓은 공은 허공에 흩어져 날아가버리게 됨을 유념해야 한다는 말이다. 날아가버리는 것도 억울한데 공치사를 하는 거냐며 주변에서 힐난을 할 수도 있으니 입이 가벼운 자는 매우 조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 말은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 세우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본 자를 기준으로 한 말이 아닐까 싶다. 공을 쌓느라 힘들게 애쓴 사람 입장에서는 그 칭찬 하나 듣고 싶어 한 마디 뱉은 것뿐인데 그마저도 하지 말라 하고 입을 닫으라 강요한다면 인생이 너무 퍽퍽하다. 자신의 힘듦을 칭찬 한 방으로 날려보겠다는데.


최근에 나도 칭찬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거창하게 하고 있다.


유년시절 내게 무척 힘든 음식들이 있었다. '도대체 어른들은 이걸 왜 먹는 거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던 음식들. 보통 쌉싸래하고 쿠리한 맛이 나는 것들이었는데, 갓김치라던가, 청국장이 그랬다. 어릴 적 무심코 한 번 입에 대고는 질색팔색을 하며 다시는 안 먹겠다 했던 음식이었다. 아, 쓴 맥주도 마찬가지!


그런데 요새는 참어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갓김치의 쌉쌀한 맛이 좋아 갓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 비워내는 건 예사다. 쓴 맥주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의 맛 고난도 레벨인 청국장만 주재료인 콩이 없어 어른이 된 나의 입맛에 맞는지 아닌지 아직 확인 전이었다. 마침 어머님께서 청국장 콩을 만들었다시며 가져가라 하셨고 당신의 아들이며 나의 남편인 남자는 어머님 댁에 가서 청국장 콩을 받아가지고 왔다.


시중에서 속이 비치는 포장재로 잘 싸놓은 것만 보았지, 직접 그것의 알알들을 마주하긴 처음이다. 청국장을 끓일 줄 아느냐는 말씀에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오겠죠?' 하고 헤헤 웃음으로 때웠다. 조금 못 미더우셨던지 어머님은 조금 되직한 된장국 끓이듯 한 후에 거의 마지막 단계에 청국장 콩을 넣어 살짝 한 번 더 끓이면 된다 팁을 주셨고, 그 말씀만 믿고 인터넷은 뒤져보지도 않은 채 평소 잘만 끓이던 나의 된장국 실력만 믿고 청국장을 끓였다. 코인육수 두 개를 물에 참방 넣어 우리고, 된장을 풀어 넣고, 양파 듬뿍, 감자도 좀 잘게 잘라 준비하고, 두부, 파를 넣고 끓여 재료를 익히고, 간을 본 후 마지막 단계에 청국장 콩을 한 국자 넣어주었다.


보글보글 끓은 후 간을 보았는데 뭐랄까 평소에 먹어 왔던 된장국보다는 콤콤하고 깊은 맛이 났다. 음~ 이게 청국장이로구나, 콩알이 입안에서 포슬포슬, 녹진녹진하게 씹히는 게 이게 다 몸이 건강해지는 맛이겠거니 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맛있는 느낌이랄까. 과연 맛있다는 말이 나오려나 기대를 안고 저녁 밥상에 청국장찌개를 올렸다. 된장마니아인 남편은 된장의 할아버지 급인 청국장도 역시나 밥 위에 푹푹 떠올려 슥슥 비벼 먹는 먹방을 시전 했다. 음, 맛있네 하는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바로 이 맛에 음식을 하는가 보다. 반찬을 만드느라 동동거리며 가스레인지와 떨어져 있는 냉장고 쪽으로 갔다가 다시 가스레인지 쪽으로 왔다가 하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느라 아픈 다리의 피곤함도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어깨뽕도 마구 차올랐다. '맛있다'는 칭찬 한 번 만으로도 이렇게 뿌듯한데, 식사하면서 맛있다는 말을 셀 수도 없이 많이 한다는 옆 나라 일본에서는 여자들이 얼마나 요리할 맛이 나려나.


그렇게 입도 달고 귀도 달달하고 마음까지 달달한 꿀맛 같은 식사를 끝내고 남편은 더 이상 밥 한 톨도 못 먹겠다는 듯 포만감의 표현으로 밥상을 앞으로 살짝 밀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역시, 엄마 덕분에 배부르게 맛있게 자알 먹었다~


평소에도 살짝 나온 배가 청국장을 듬뿍 먹어 더 볼록해져 오른 것 같았다. 덕분에 만지기 더 좋아진 배를 스스로 두어 번 두들기더니 쓰다듬었다.


매우 흐뭇한 칭찬의 말이다. 칭찬의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엇! 잠시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엄마"란 자신의 엄마인지, 우리 아이들 기준으로 엄마를 말하는 건지 불분명한 말이라 잠시 헷갈린다. 혹시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데 나 혼자 착각해서 너무 좋아한 건 아닐까. 만일 그런 거라면 바보도 그런 상바보가 없을 테니 남편에게 확인차 다시 물었다.


엄마면 어떤 엄마를 말하는 거야?

어머님이야, 나야?


그랬더니


자신에게 엄마는 하나란다.

내 엄마는 하나뿐이라며 자기 엄마를 말한단다.


충격이다.

아... 그렇지, 엄마는 하나뿐이지...


그런 줄도 모르고 나에게 칭찬한 줄 알고 좋아서 실실거렸구나. 맞는 말인데 왜 슬슬 화가 올라오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아기들에게 최대 난제라는 유사한 질문을 던졌을 때 아기들도 대답은 저리 안 할 텐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었을 때 조금 눈치가 있는 아기라면 지금 현재 자신의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를 확인 후 상황에 맞게 대답을 잘도 하던데, 아이도 제 살 궁리 찾아 없는 눈치를 끄집어내 살아갈 방도를 찾는 법인데.


평소 눈치가 없지도 않은 남편이라 이럴 땐 눈치가 잠시 출타 중인 건지,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청국장 콩만 가지고 맛난 청국장을 만들 수 있느냔 말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늘 함께 생활하는 나보다 지금 현재, 같은 공간에 계신 것도 아닌 자신의 엄마를 1등으로 놓는 그 발언에 후순위로 밀린 나는 기분이 정말  같았다.


성질이 나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그렇다고 엄마는 하나뿐이라는 그 틀리지 않는 말에 트집 잡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입장 바꿔 나부터도 내 엄마는 하나뿐이니까. 그러니 그저 몸을 좀 틀어 앉을 뿐이었다. 마주 보고 앉은 남편을 흘겨보기 위해서다. 몸이 틀어진 상태에서 고개를 삐딱하게 장착한 후 인정사정없이 남편을 째려보았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맛있다 맛있다 노래 부른 건 '엄마 덕, 엄마 덕, 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었던 건 다 엄마 덕이야.'라고 노래를 부른 거였다.


엄마덕(duck)과 아기 오리들. 이미지 출처. freepik




설거지를 마치고 만화 삼매경인 초 5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상을 즐기는 나의 뇌는 금세 30대가 된 아들을 그려놓았다.


다복한 가정을 꾸린 내 아들이 마누라 앞에서

당장 옆에 있지도 않은 엄마인 나를 생각하며

감히 마누라 앞에서


엄마가 주신 청국장 덕분에 맛나게 먹었다고 말하는 모습이 마치 홀로그램 영상의 한 장면처럼 너울댄다.


나에겐 며느리이고 아들에겐 아내인, 얼굴이 희미한 그녀가 아들에게 재차 질문한다.


당신은 그러니까 어머님이야, 나야?

하고 질문해도 나에게 엄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이야.


하고 답할 아들.



하핫.

갑자기 뿌듯한 기분이 몰려온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참된 내로남불이 아닌가.


정신을 차려 공상에서 빠져나온 후 어느새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본다. 이건 뭐 감정 기복이 이렇게 널을 뛰어서야. 아무튼 어머님께, 보내지도 않을 나 혼자 영상편지를 써 보게 됐다.


어머님 행복하시죠?

당신 아드님은 정말 효자예요~~ 참효자.


그리고 돌아서서 내 아들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들~ 너도 효자가 될 거지?



(흐음. 그래도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사랑받으려면 아내 앞에선 아내의 수고를 알아주고 칭찬을 좀 해주는 것이 어떨까.)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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