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Nov 02. 2022

도대체 홍시는 언제 되는 거야

땡감을 바라보며



딸아이는 홍시를 참 좋아한다.

딸아이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살가움은 아니지만 아이 아빠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 혹은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머릿속에 넣어두는 사람이다. 그리곤 한 번씩 머릿속에서 꺼내어 뜻밖의 시간에 뜻밖의 선물을 준다.


보름 전 우리 집에 홍시가 배달되어 왔다.

내가 구매한 것이 아니므로 남편이 주문한 것임을 직감으로 알 수가 있었다.

말콩말콩한 느낌의 홍시를 기대하면서 말랑한 홍시가 혹시 터졌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스러움과 함께 박스를 열었는데 엇~! 잘못 시킨 거 아니야? 하는 소리가 먼저 나갔다.


홍시가 아니라 땅땅한 땡감이다. 수박한테 매번 실례합니다 하듯 똑똑 노크하면 땡땡 소리가 날 정도의 단단한 단감.


남편은 혹시나 자기가 잘못 주문했는지 주문내역을 확인하였고 분명 홍시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는 의아해했다. 문득 재작년에 어머님이 대봉감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아직 바로 먹을 수는 없고 일주일에서 이 주 더 지난 후에 말랑해지면 먹어라라고 하신 말씀.


그제야 이해가 간다. 감도 대봉감과 가족 같은 사이이니 당연히 받은 후에는 말랑해질 시간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말랑해서 바로 먹어도 될 정도의 홍시나 대봉감이면 택배로 받을 수도 없다. 아무리 조심해서 배송을 한다 하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죽이 되어 버릴 것이고, 과연 택배가 조심스레 배송되어 올지도 미지수다.


무튼 기다리기로 한다.

박스에 칼을 댔을 때부터 말캉하고 달큼한 셔벗 같은 홍시를 기대하고 한입 베어 물 상상까지 했지만 실상은 단단한 땡감이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마음 같아선 에디슨이 닭의 알을 품듯 몽땅 따뜻하게 품어 빨리 맛을 보고 싶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디기로 한다.


그러기를 삼 일 후 말캉한 감이 하나둘씩 보인다.

맛을 보니 정말 달콤하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아직 멀었다. 아직도 단단한 촉감.

이것들 같은 날 왔는데 왜 익는 속도가 다 다르지?


일주일이 흘렀다. 겨우 한 두 개 먹었다.

도대체 얘네들은 언제 홍시가 되는 거야!


그러다가...

어...!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다들 똑같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한날한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철이 들 수가 없다.

같은 나이어도 참 철이 없는 사람. 어린 나이어도 어른 못지않게 많은 걸 아우르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 나이가 많아도 철부지 못지않은 사람. 과연 사람이 맞기나 한 건가 하는 사람. 등등 모두가 같은 속도일 수가 없다.




모두가 익어가는 속도가 다르다.

빨리 익으라고 보챈다고 감이 홍시로 빨리 되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기다려주어야 한다. 찬찬히.

인고의 시간을 가지고.

문득 저 감이, 말캉해지는 익음이 아닌 점점 상해버려 못 먹게 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되지만 점점 익어가는 중이리라 기대를 해 본다.


베란다는 추워서 그런가.

남아 있는 감들을 꺼내어 식탁 위에 네 개는 1층, 2층에는 1층의 정 중앙에다 올려놓았다. 어찌어찌 5개만 남았다.



감들은

지금

홍시가 되어가는 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