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May 03. 2024

내성적이고 내향형이신 분들은 글을 쓰세요

브런치에 글 쓰는 작가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 그저 기분 탓일지 모른다.

내가 처음 브런치를 만나고 들어와 글을 쓰며 친한 친구를 사귀듯 구독자님들과 왕래하고 내가 구독하니 나를 구독해 준 작가님들과 서로 잦은 소통으로 으쌰으쌰 힘을 주고받듯 글을 줄기차게 써 내려갔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그때의 으쌰으쌰가 사라지고, 구독자면서 작가님이시던 분들도 사라지고, 그 작가님들의 글도 사라지고... 그분들의 여러 사정으로 잠시 글을 놓아 정체기처럼 보여 그럴 수도 있지만...


몇몇 작가님들이 싫증이 나서 이 브런치를 떠나거나 말거나, 글을 쓰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브런치스토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글쟁이들의 작가 신청서를 검토하고 합격여부를 가려 신입 작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참 한결같다. 바쁜 일로 잠시 브런치에 뜸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접속하여 브런치를 둘러보면 이제 막 작가가 되었다고 행복함을 마음껏 발산하며 열심히 글을 쓸 거라는 신참내기 작가님들의 필명들이 우후죽순 눈에 들어오니 브런치는 참 열일하는구나 하고 새삼 실감한다.





사람은 꾸준하기가 참 어렵다.

이 꾸준함을 성공의 잣대에 두면 성공 여부를 점치기는 어렵지 않은데 한 가지 일을 싫증 내지 않고 꾸준히 매달리면 성공이요, 꾸준함을 포기하면 곧 실패라 보면 된다. 마라톤을 할 때 출발선에 모두 서서 기필코 도착 지점에 다다르고 말 거라는 당연하지만 벅찬 각오를 다지고 달리다가도 중도에 느슨해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전문 선수가 아닌 이상 42.195km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거리를 달리다 보면 지쳐 걷는 사람도 있고, 목이 말라 타는 목을 축이느라 물을 마시며 잠시 멈춘 사람도 있을 테고,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길가에 난 코스모스에 한 눈을 팔고 꽃과 대화를 나누려 속도를 줄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결연한 의지를 비웃듯 갑작스레 난 다리의 쥐 때문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다 제외하다 보면 성실하고 묵묵히 달려 나가는 사람들 수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옆에서 끝까지 동행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내게서 멀어져 가면 나는 지금 계속 이렇게 달려 나가는 것이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든다. 끝 모를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나도 중간에 그냥 포기하는 게 더 이득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들고 숨은 더욱 가빠진다. 애초에 무슨 일이 생겨도 끝까지 달려 나가야만 한다고 파이팅을 외친 게 무색해질 정도로...


이곳 브런치도 다를 게 없다.

초반에 전투적으로 달리던 사람들이 뒷심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를 메우듯 새로운 작가들은 끊임없이 합류된다. 나는 또 지켜본다. 신참내기의 치기 어린 의욕을. 그들은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 후에 포기에 가까운 싫증에 진저리를 내고 글쓰기 대열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것인가. 물론 이곳에만 발길이 뜸할 뿐이지 따로 책을 준비하는 분도 계실 테고, 다른 매체에 기고하느라 시간이 부족한 분들도 계실 테다. 또 여기에 쓰지 않는다고 아예 절필하는 게 아니라 이곳보다 더 흥미로운 매체라 생각하는 곳에 글을 쓰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보다 그저 글쓰기에 환멸이 난다며 글 따위 쓰지 않겠다 하시거나 그 누구도 내 글에 관심 따위 없고 읽지 않는 것 같다며 글 써서 뭐 하나 하는 분들이 좀 더 많을 것 같다는 게 나만의 추측이다. 나라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그 대열에 속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글을 쓰다 보니 사색을 자주 하게 된다. 때론 망상에 가까운 사색도 피해 갈 수 없다.

사색은 당연히 조용한 곳에서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원래도 성향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피로하게 느끼는데 더욱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된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 더 내성적이고 더 조용해졌다.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추천하고 싶다.


길을 걷다 봄바람이 살랑거려, 찌뿌둥했던 몸이 어제보다는 가뿐하여, 꽃향기에 갑자기 마음이 설레어, 멀지 않은 곳에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누가 되었든 말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수다쟁이 빨간 머리 앤이 된 것처럼. 반대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 '도를 아십니까' 묻는다면 내가 속을 만큼 어리숙하거나 만만해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경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내가 상대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했는데 상대의 반응이 그렇다면 내 기분은 참 떨떠름할 테다. 나의 순수한 마음을 그리 매도해 버리다니 하면서. 그러니 상대는 무슨 죄인가. 처음 본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면 내가 느끼는 감정과 똑같이 나를 혹시 호구로 보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겠지.


그래서 '오늘은 참 날씨가 좋네요!'하고 누군가를 붙잡고 말할 용기가 없는 내향형의 인간이라면,

마치 누군가에게 말하는 심정으로 글을 써보면 어떨까.

내 의견과 내 이야기와 내 마음을 써 놓고 흡족해한다. 누군가를 내 어깨가 닿을락 말락 할 곁에 두고 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듯 써 내려간 글이니 속도 후련하고 산뜻해진다. 에디터님들의 간택은 소수 몇몇만 누리는 행운이니 글 조회수는 그냥 내버려 둔다. 메인에 오르면 기분 좋고 안 올라도 그만이고.


그런 나의 글에 생판 모르는 누군가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준다. 글 쓰는 나의 심정을 이해하고 글 속의 내 뜻을 공감해 주는 건 덤이다. 나의 글을 찬찬히 읽은 티가 역연하다. 그분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나의 글을 읽어준 것이다. 글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이런 걸까. 오프라인에서 모르는 사람이 괜히 말을 시켰을 때 경계심을 갖는다면 온라인상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관심을 보이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내 글이 저 사람의 마음에 굉장한 파문은 아니어도 잔잔한 울림 하나 선사해 주었구나 하고 글 쓰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나를 벗겨먹으려고 접근하는 게 아닌 '글'만 가지고 소통하는 순수함.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 일인지.  


그래서 이 조그만 공간인 나의 집 나의 방 안에서 나는 또 글을 쓰는가 보다.


글로 소통하고,

글로 웃음 짓고,

글로 교류하고,

글로 세상의 한 귀퉁이를 미약한 힘으로나마 수만분의 1, 수억분의 1 아니, 수조, 수경분의 1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글을 아니 쓸 이유는 없지 아니한가.





<덧붙임>

억 = 10의 8 제곱

조 = 10의 12 제곱

경 = 10의 16 제곱

해 = 10의 20 제곱

...

...

...

...


불가사의 = 10의 64 제곱 (사람의 힘으로는 미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수)

겁 = 10의 72 제곱

무량대수 =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수/


'경'보다 더 큰 수는 차고 넘치지만, 너무 큰 수를 등장시켜 나를 작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것인데 자꾸만 누가 훔쳐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