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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pr 19. 2024

나의 것인데 자꾸만 누가 훔쳐간다

정말 나의 행복을 원하는 거 맞아?



오랜만에 온 가족이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기로 했다. 

관람비도 많이 오르고 코로나 기간 동안 OTT로 봐오던 습관에 젖어 영화관은 늘 한산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예약도 하지 않고 우선 가고 보자를 시전 했다. 역시나 예전만큼 붐비지 않는 영화관. 


무얼 볼까 둘러보는데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파묘'가 눈에 들어왔다. 뭐 얼마나 험한 게 나왔길래 다들 난리인가 싶어 무척 보고 싶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는 영화는 아닌 것 같아 그건 며칠 후 남편과 둘이 보기로 하고 오밀조밀 귀여운 캐릭터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유미의 세포들'을 보기로 했다. 몇 분 보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많이 듣고 보았던 것 같은 대사들이 흘러나와 데자뷔인가 싶었다. 


장거리연애는 장점이 없다. 

애틋하고 설레지만 그뿐이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줄줄이 내가 썼던 글이 영상의 대사로 탈바꿈되어 유미 안의 세포들이 서로 주고받았다. 


충격이다. 

내가 쓴 글과 너무 비슷하다. 


https://brunch.co.kr/@287de5988170492/83


물론 누군가가 생각해 낸 것이 나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할 수도 있겠지.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같아도 너무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제주도의 유명 돈가스를 예약해 놓고 같이 먹자는 대사까지... (https://brunch.co.kr/@287de5988170492/475) 작은 한숨이 나왔다. 글 쓴답시고 머리를 좌삼삼 우삼삼 굴려가며 창작을 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나 딴엔 머리를 쥐어짜내 글을 썼는데 유명 작가나 혹은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하는 기존 작가들이 하나씩 둘씩 내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게 되면 나는 결국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니 말이다. 


눈을 세모랗게 뜰까? 


이것도... 마찬가지다. 


https://brunch.co.kr/@287de5988170492/225


'김유정'님의 여러 유명한 소설은 우리에게 심금을 울리며 오래 전해져 오는 명작이 되었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단어는 '뽀뽀'였다. 김유정 님이 세상에 없던 단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입맞춤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가 1939년 소설 '애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 단어. 그 시대에 없던 단어를 과감히 만들어 '그를 얼싸안으며 뺨도 문대고 뽀뽀도 할 수 있는'이란 문장 안에 사용했고 1961년이 되어서야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올랐다. 



글쟁이로서는 자신이 만든 단어를 대중이 쓴다고 하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테다. 마치 조물주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나도 그런 생각으로 말을 지어냈던 것이다. 사전에는 없는 단어 '세모랗게'


눈을 동그랗게 뜨지, 세모랗게 뜰까요? 


와 같은 문장을 썼는데 유튜버들이 꼭 내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처럼 자신들의 영상에 내 아이디어를 마구잡이로 가져다 쓴 것이다. (그들은 '세모랗게'라는 단어는 정식 용어가 아니니 좀 어색하다 느꼈는지 '세모나게'라는 말로 바꿔 썼지만 내가 설정한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


아이디어든 글이든 단어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니 그들은 '은근 재밌네~'하는 마음으로 가져다 썼겠지만 나는 재밌지 않았다. 묘한 불쾌감이 일고 찝찝했다. 


이런 생각과 고민으로 글을 마구 써서 내놓기가 저어된다고 했더니 선배작가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글은 작가마다 문체와 글투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크게 고민하지 말고 맘껏 써도 된다고. 그게 좋을 것 같다고. 


그래, 같은 소재라 해도 글을 쓰는 문체가 다르고 작가들마다 글투가 제각각이니, 다르게 느껴지겠지 하며 써왔다. 하지만 영상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니던가. 


뭔가 창조해 낸 걸 누가 가져다 쓰면 나의 노력은 허사가 되는 것 같아 영 께름칙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더니...

흐음. 이런 마음으로 공개된 이곳에서 글을 계속 써도 되는 걸까. 



그래서 어떤 작가님들은 추후 책을 출간할 때 사용할 소재는 일절 브런치 공간에서 발행을 안 하시고 책을 내실 때 딱! 거기에만 써서 책으로만, 여보란 듯이 저자명으로 출간하시는 건가. 

책 출간하는 내용 따로 브런치에 발행하는 글 따로. 

애초에 그렇게 글을 쓰는 게 맞는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어떤 게 맞는 건지. 




에효... 모르지. 나도 내가 만든 나만의 단어라 굳게 믿었던 것과 나만의 독특한 사고인 줄 알았던 것이 알고 보니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었는지도...


나의 망상일 수도...


아! 하나 더 생각났다. 

영화 '시민덕희'에서도 내가 쓴 문장이 나온다. (라미란-내가 기사에서 봤어, 형사-그건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까 기사에 나오는 거고요.)

소름이 돋는다...



*이미지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Ralph/Altrip/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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