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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07. 2024

엄마, 또 술 마셔?

너, 뚫린 입이라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나는 알쓰다.

남편도 알쓰다.


한때 알쓰라고 하면 알코올을 잔뜩 마신 후 꽐라가 되어 마치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보이니 알쓰라고 하는 건가, 굉장히 술을 잘 마셔서 곤드레만드레 취한 거니 술고래를 말하는 건가 했더니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알쓰란 알코올과 완전 상극이므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는 걸. 남편은 알코올분해효소가 없고 나는 그 효소가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다는 약간의 차이점만 있다.


그러나 알쓰에게도 좋은 점은 있다.

가성비가 최고라는 거다. 합법적으로 정신을 헤롱헤롱하게 해주는 음식(?)인데 고주망태 되도록 마실 필요 없이 한두 잔만으로 알딸딸하게 만들어 주면 적은 비용으로 큰 어지러움(?)을 주니 이 얼마나 가성비 끝판왕인가 말이다. 성시경의 '먹을 텐데'에서 성시경은 신동엽과 식사자리인지 술자리인지 모를 자리에서 서로 눈을 찡긋거리고 의견을 맞추는가 싶더니 소주를 소주잔이 아닌 맥주잔에 자연스레 부어 먹는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 준 적이 있다. 두 사람 다 알아주는 주당이어서 깔짝깔짝 한 잔씩 들이켜는 술로는 빨리 취기가 오르지 않으니 어차피 몸에 술 석 잔 들어갈 것을 그 석 잔을 한 번에 모아 한 번에 들이켜고 빨리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그 알딸딸함을 오래 만끽하겠다는 이유였다.


오호~ 꽤나 그럴듯한데?

그래프 상으로 보자면 완만한 상승곡선이 아닌 급격한 상승곡선으로 시간을 단축시키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알쓰일 뿐이니 맥주잔에 소주를 벌컥벌컥 부어 성시경, 신동엽처럼 따라 했다간 위장 다 망가질 테고 저런 방법도 있구나 하고 그저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무리 알쓰지만 느끼한 음식을 먹었거나 갈증이 심하게 날 때는 맥주 한 잔, 아니 한 모금이 간절할 때가 있다. 어지간하면 아이들 없는 시간에 둘이 오붓하게 마시는 게 교육상으로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몇 병씩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도 아니니 한 잔 정도는 술이 당기는 타이밍에 맞추어 마시고픈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제동이 걸려버렸다.


막둥이가 355ml 캔맥주를 꺼내는 나를 보고는


"엄마, 또 술 마셔?"


하고 내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뱉은 것이다.


"술"도 모자라 감히 "또"라는 단어를 붙이다니?


알쓰인 내가 술을 마셔봤자 500ml 도 아닌 355ml짜리 고작 한 캔이 다인데 그것도 내가 다 마시는 게 아니라 캔 하나로 신랑과 나눠 마시는 건데 "또" 라니? 누가 보면 알코올중독자인 줄 알겠다??


한껏 겁이 나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엄마, 아빠가 술 마시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하는 막둥이를 보자니 나 어릴 적 엄마가 죽을까 봐 걱정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우리 집이었기에 엄마도 당연히 여자라면 누릴 수 있는 삶을 사신 적은 별로 없었다. 변변한 화장품도 없이 화장 흉내만 내던 엄마셨다. 한 번은 엄마 친구분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화장품 방문판매 여직원의 권유로 엄마 친구와 엄마는 마룻바닥에 누워 마사지 서비스를 받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나 그랬는데 화장품을 바르기 전 피부를 진정시켜 주는 얼굴마사지 장면을 처음 목격하게 되었다. 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말도 않고 죽은 듯 누워 있는 엄마와 엄마 친구를 보며 어린 나는 왜 그랬는지 엄마가 죽으려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간에 두 성인 여성의 얼굴에는 유령의 얼굴을 닮은 흰 가면(마스크팩)을 덮었으니 죽은 사람이 눕는 관만 없을 뿐, 어린 내 눈에는 엄마가 꼭 죽으려고 마음먹은 것으로 오해하고 만 것이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죽지 말라고 엉엉 울었다. 부모의 도움이 없어서는 살기 어려운 일곱 살짜리 어린애가 두 눈으로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니 얼마나 무서웠는지 통곡을 하며 눈물 콧물을 흘려댄 기억이 얼핏 나는데.


추측컨대 나의 막둥이는 아마도 술의 위험성이라는 짧은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던 모양이다. 술을 마시면 간이 손상을 입고, 기억력이 감퇴되며, 성인병이 오고, 명이 단축된다 뭐 이런 흐름이겠지.


그래서 냉장고에 하나 쟁여둔 키가 크다 만 캔맥주 하나에도 그리 놀라 기함을 하곤 원망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을 꺼낸 거겠지.


"엄마, 또 술 마셔?"


만일 내가 매일매일 술 없이 못 살고 밥 먹을 때도 늘 반주를 하며, 바이브의 "맨날 술이야"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겠다. 하지만 술 마시냐는 질문에 보란 듯이 오른손에 술을 들고 있던 내가 "아니"라는 대답을 할 수는 없으니 이것 참 졸지에 술고래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 어쩌면 그렇게 억울한지. 아마도 어릴 적 내가, 예뻐지겠다는 엄마 앞에서 목 놓아 운 것 같이 사랑하는 우리 막둥이 눈에는 엄마 아빠의 입으로 들어가는 알코올 한 방울 한 방울이 마치 독약처럼 느껴졌던 걸까.



아들~

엄마는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과하게 마시지 않는단다. 사실 마시고 싶어도 못 마셔... 네가 커보면 알겠지만 400ml도 안 되는 맥주를 성인 남녀가 둘이 나눠 먹는다는 건 이건 정말 장난하는 거라구... ㅠ

너 그리고 엄마가 지켜볼 거야. 그렇게 건강을 외치는 너, 어른 되면 술이고 담배고 몸에 안 좋은 건 하나 안 하나 한 번 보자고~ 내가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본다. 기대해라.


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간절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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