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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n 15. 2024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고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아."


아침밥을 한 술 뜨다 말고, 중1 딸아이가 설거지하는 나의 등에 대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 스스로 자신에게 실망한 표정이다.


내 딸이 이기적이라니? 내가 그런 딸을 낳았을 리가 없는데?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평소 눈보다 더 큰 눈을 만들어 딸을 바라봤더니 하는 말이 이랬다.


"만일 지구가 곧 멸망하려고 해서 우주선에 타게 됐을 때 내 옆 자리에 태우고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자리를 내주어 나 대신 앉게 하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 거래. 근데 난... 내 자리를 누구한테도 내주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내가 오래 살고 싶거든. ㅠ"


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그래, 그런 거였지.

나보다 키가 좀 더 크지만 아직 해맑고 순수한 눈동자를 가진 딸아이가 자기 스스로를 너무 못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게 안타까워 고개는 딸아이 쪽으로 고정하고 고무장갑 낀 손은 그릇을 계속 씻으며 나는 바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에이. 그건 세상 모든 사람이 대부분 다 그럴걸?

엄마도 그래. 다른 사람보다 내 목숨이 제일 소중하지. 아마 아빠도 그럴걸?"


이쯤 되면 평소 쿵짝이 잘 맞는다고 자부해 온 우리는 다정한 바퀴벌레 한 쌍이니까 나의 반쪽인 남편의 대답은 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암, 그렇고 말고~" 하고 얼른 나와 줘야 했다. 하지만 어젯밤 야근으로 오늘 아침에 퇴근한 데다 출출하니 아침밥을 열심히 먹고 난 직후라 식곤증이 몰려오는지 천 근 만 근인 눈꺼풀과의 사투가 바빠 보인다. 그러니 나의 질문은 애석하게도 남편의 귓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귓바퀴에서 그만 튕겨나가고 만다. 답이 없다.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왼팔이 자기 이마를 쓸듯 만지더니 멈췄다 움직였다를 반복한다. 깊은 잠의 수렁으로 한 발 더 가까워진 모양이다. 대답은 물 건너갔다.  


남편의 맞장구를 기다리다 안 되겠다 싶어 얼른 내가 다시 말했다.


"거봐. 아빠는 지금 엄마보다 잠을 더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잠과 함께 가고 싶은가 봐."


딸아이와 내가 마주 보고 씩 웃었다. 딸아이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언뜻 비쳤다가 사라졌다.


요새 지난 드라마 몰아보는 게 우리 부부의 취미인데 전지현이 인어로 나오는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이 생각난다. 조선시대에 이민호는 인어인 전지현 대신 창을 맞고, 현시대에 뭍에 나온 인어 전지현은 이민호 대신 총을 맞았다. 서로를 너무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미지 출처. spotvnews


깊은 사랑을 하면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를 위해 목숨을 거는 행동이 가능은 할까? 드라마니까 그런 거겠지? 현실에선 서로 싸우지 않고 배려하며 알콩달콩 살기나 하면 다행이지.


딸아이가 갑작스레 던지듯 말한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점 때문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자리에 있는지 또 나는 그들을 어느 자리에 앉혀 두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랑 참 좋지만,

그래도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제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ㅋ


그러니 딸~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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