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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14. 2024

책은 날 운동하게 해

지독한 집순이 방탈출 방법

나른하게 앉아있다.

자세가 스르르륵 미끄러지더니 이제 곧 반숙 계란 프라이가 되기 일보직전이다.  

꽤 오래 앉아 있었더니 내 엉덩이는 그새 방바닥과 친밀감을 형성했고 그 둘을 떼어내는 건 갈수록 힘이 든다.


마침 천근만근인 내 엉덩이를 떼 줄 문자가 띠리링 울린다.


"상호대차 신청하신 도서가 OO도서관에 도착하였습니다."


내일은 빨간 날이니 뭉기적대지 말고 냉큼 가서 받아와야지.

억지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머리도 한 번 빗어보고

흐리멍덩한 눈썹에 아이브라운 펜슬로 슥슥, 

핑크빛 돌다 만 내 입술에 복숭아 색 립밤도 톡톡

딸내미 것인지 내 것인지 분간도 안 가는 슬리퍼를 신고 나가본다.


역시 나오길 잘했지.

그리 무겁던 엉덩이는 내게 붙어있는지 없는지 느낌도 없고

신을 신고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산들바람과 꽃내음과 새소리가  

내 등을 지그시 밀어주니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걸음은 제가 알아서 걷는다.


한 페이지에 석 줄만 담겨 오래간만에 진도가 팡팡 나갔던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을 반납하고

상호대출 신청했던 책 <셜록의 아류>를 받아왔다.


이것도 나름 방법이라 우겨본다.

지지리도 운동 안 하는 나를 운동하게 하는 법.


여기저기서 흥미롭게 들리는 책들을 마주하면

수시로 제6의 장기인 핸드폰에서 '나에게 카톡'을 열고 적어 둔다.

잠들기 전 하루를 마무리하기 앞서

도서관 홈페이지를 열어 책을 예약한다.  

만일 책이 없어도 문제는 없다.

상호대차를 신청하면 되니까.

나태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땐

내 몸 비서를 자청한 도서관이 보내 준 문자를 받고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책은 나를 일으켜 걷게 하니

마음의 양식뿐 아니라

내 몸 건강에도 좋다.


"운동을 책으로 배웠어요"가 아니라

그냥 책이 날 운동하게 한다.

도서관의 지분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자꾸만 대출하면 된다.


이걸 내가 다 읽을 수 있을까 없을까 고민하기 전에

그냥

대출

하고 본다.


다 못 읽으면 재대출 하느라 도서관 방문

다 읽으면 반납하느라 도서관 방문

예약도서 오면 가지러 가느라 방문

상호대차 오면 역시 가지러 가느라 방문


이만하면

내 운동코치가 확실하다.  


마음은 찌우고 살은 빠지게 하는 책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오랜 친구 같다.





https://youtu.be/3kGAlp_PNUg?si=v_Dk2IfJTSbAkB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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