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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n 07. 2024

아들, 용이 되거라

트럼프 따위

핸드폰, 닌텐도, TV 리모컨을 모두 뺏었다.

그럼 아이는 내게 보드게임을 들고 와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뱅(Bang - 보안관이 총을 쏘고 시민이 등장하고 뭐 그런 카드 게임이다).

내 귀에 대고 종알종알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해주긴 하는데 무슨 규칙이 그렇게도 많은지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369게임이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자리 숫자까지는 박수를 잘 치지만 두 자리가 시작되면 3, 6, 9 때 박수에다가 3의 배수인 12, 15, 18에도 박수를 치는 건지가 아직도 헷갈리는 나는 뱅 따위 언감생심 감히 도전 불가이다.


그렇다고 부루마블을 하자니 이건 족히 두 시간은 넘어가는 보드게임이라 시작부터 탈락이다.


가장 만만한 놀이가 원카드인데 이런 제길, 집에 카드가 없다.

하나 살까 봐? 하고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툭 던져 물었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애한테 뭘 굳이 그런 걸 사주려고 하냐며.


왜?라고 물으려다 곧바로 깨달음의 탄식이 나왔다.

아버님께서 심심하실 때마다 동양화를 곧잘 그리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붓과 종이 없이 주로 손에 쥐고서 감상만 하는 그 동양화...

그래서 서양화와도 같은 트럼프를 남편은 내켜하지 않았다. 몰라도 되는 걸 굳이 가르쳐 줄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내가 무슨 포카를 하재, 훌라를 하재, 바둑이를 하재? 어! 나 왜 다 알지?

그냥 원카드일 뿐인데. 모양이 같은 걸 내거나 숫자가 같은 걸 내는 세상 단순한 게임.


하지만 아예 그런 건 손에 쥐어주는 것조차 싫은 기색이다.


한데 나쁜 것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아이가 바르크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알코올중독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술 한 잔도 입에 안 대는 자녀는 어떻게 설명할 거고,

개망나니 부모 아래 올곧게 자란 아이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뭐 멀리 갈 것도 없네. 당신도 그런 거 안 하잖수?


물론 개천에서 이무기가 나기 쉽지, 개천에서 용이 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란 건 알지만 나쁘다고, 위험하다고, 유해하다고 그 모든 걸 아이들에게 다 차단시킬 수 있느냐 하면 또 그건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원카드를 할 수 있게 카드를 사줄 것이다.

사 주고 재미있게 놀면서 도박의 위험성을 틈날 때마다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


이건 마치 생체실험(?)하는 느낌이다. 몇십 년 동안 실제로 인간에게 직접 실험을 한 후 그 결과를 알아보는 실험.


우리 아들이 할아버지처럼 도박에 빠지는지 아닌지 한 20년 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또 제 브런치를 찾아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브런치가 그때까지 유지되어야 하고,

내가 죽지 않고 건강해야 하고,

우리 아들도 건강한 사회인이 되어야 할 텐데.


위 세 가지 모든 항목이 모두 이루어지길 우선 기도해야겠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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