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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n 10. 2024

연극 [불편한 편의점]을 보고



석 달 전 김호연 작가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완독했다.

베스트셀러답게 도서관의 진열된 서고에서 직접 볼 수는 없었고 이 책을 앞서 예약한 3명의 독자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에 넣어서 그런지 읽을 때 더 달달한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일련의 사건들을 상상으로 떠올려 보곤 하는데 오로지 머릿속으로만 그려내기엔 아쉬운 느낌이었다.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여럿 봤기에 이 책 또한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생각하던 중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로 티켓 구매를 했고, 혜화동 접수하러 고고~!


2024. 6. 9 서울 혜화동 올웨이즈씨어터 2시 공연 관람. 러닝타임 100분



말도 많고 화도 많고 오지랖도 은 오선숙 역을 맡은 배우가 극 시작 전에 나와 몇 마디 안내를 마치고 극장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인 <선물드려요> 이벤트를 진행하는 시간이었다. '올웨이즈'를 외치며 손을 높이 든 관객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는데 의욕이 앞선 건지 선물에 눈이 먼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플라스틱 생수병을 던진 어떤 정신 나간 관객 때문에 시작도 전에 심히 마음이 불편했다. 배우분의 발치에 떨어졌는데 물이 들어 있지 않은 빈병이라 다행이었지만 꽃도 아닌 쓰레기가 날아와 하마터면 몸에 맞을 뻔했기에 마음에 상처를 받으셨는지 표정이 일순간 굳어져 보는 내가 다 속이 상했다.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던지는 건 범죄입니다.'라고 분명히 말한 후 다시 분위기를 북돋았는데 베테랑 배우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공연을 즐기러 왔을 땐 상식을 좀 갖추고 입장하면 좋겠다.



극 전반을 이끄는 이는 노숙자 "독고"이다. 가족도, 친구도, 직업도, 집도 절도 없으니 언뜻 보기에 가장 불쌍해 보이고 이 사회의 잉여인간으로 보이는 그는 그저 루저에 불과할 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점만을 보자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시현, 점장인 선숙, 극작가인 인경이 독고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듯해도 오히려 이들은 독고에게 위로와 위안과 희망을 얻는다. 돌고 도는 세상이라는 걸 일깨우듯 염여사가 독고를 돕자 독고는 다른 이들을 돕게 되는 형국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니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늘 유쾌하고 명랑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사정, 걱정, 고민, 한숨이 있기 마련이다. 독고는 쌍둥이의 아버지 경만술을 끊도록 돕고(실은 술 대신 옥수수수염차 중독을 만들어 놓지만) 선숙의 푸념 섞인 한풀이도 가만히 들어주는데 인경은 그런 독고에게  사람들을 돕는 건지 묻는다.  


그러자 독고는 더듬거리며 말한다.


"꼭 진심이 아니어도, 친절한 척만 해도 내가 친절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성악설을 믿는 나는 친절한 척이라는 "척"에 '맞아 맞아'하다 결국 친절해진 나를 발견한다는 말에 허를 찔린 것 같았다. 친절한 "척"이라도 해서 서로의 힘듦을 좀 보듬어준다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은 그야말로 감성이 풍부한 나의 친언니는 극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내 옆에서 훌쩍이느라 정신이 없다.(원래 내용이 눈물을 그리도 자아내던 이야기던가. 아님 내가 요새 감정이 메말라가는 건가. 책을 미리 읽은 터라 어느 정도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어서 좀 덤덤하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본다.)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좀 풀렸기를. 어찌 됐던 친언니랑 같이 보길 잘한 것 같다.



시현, 선숙, 염여사, 독고, 인경


독고, 인경, 경만, 멀티맨



목표가 없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세상이다.

한심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그럴듯한 목표를 정한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도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목표를 정한다. 목표하는 꿈은 통상 내가 서 있는 길의 끝자락에 놓인다. 그 목표에 가닿기 위해 길 위에서 달리고, 넘어지고, 일어나 다시 걷고, 발이 퉁퉁 부어도 아픔을 견뎌가며 계속 걷는다. 길의 마지막에 놓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고군분투하는 삶이다. 괴롭고 외롭고 힘에 부치지만 이겨내야 하싸워야 하기에 지친다.


하지만 생각을 좀 바꾸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 자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걸어가는 내내 소소한 행복과 함께 한다면 삶을 살아내기가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



아니, 죄송할 건 없고요... 좀 불편하네요.
어쩌다 보니... 불편한 편의점이 돼버렸습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편의점인데 진열되어 있는 물건도 별로 없고 손님을 맞는 알바마저 왠지 모를 불편함을 준다고 해서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종종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이없게 만들어진 제목, 불편한 편의점.


'삶'도 불편한 것투성이다.


태어날 때부터 뭐가 그리 불편한지 세상을 처음 대하는 아이의 시작은 방긋 웃는 미소가 아니라 자지러지는 울음이다. 학교든 직장이든 첫날은 설렘만 담아 맘껏 행복하기만 해도 좋을 텐데 처음이니 실수할까 봐 혹은 잘못 택한 나의 길일까 봐 두려운 마음도 한가득이다. 부단히 노력한 끝에 어찌어찌 대단한 결과를 얻어내지만 그것에 평생 나의 모든 운을 다 끌어 쓴 것일까 봐 다시는 나의 인생에 이런 행운은 또 없을까 봐 묘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참 불편한 인생이다.


그러나 편치 않다 해서 불편한 일을 모두 놔버릴 수는 없다.

그러니 서로 의지하고 믿고 힘을 주고 도움을 받는다면 불편함을 좀 물리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꼭 물리치지 않더라도 같이 안고 간다 해도 좀 덜 힘들지는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알코올치매로 까맣게 잊었던 기억을 되찾은 독고는 대구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한강을 건너며 되뇐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https://youtu.be/NmfSF9JiPTo?si=TrcuP9afiOf8rJ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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