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엄밀히 말하면 주 5일이니 1년 기준 약 250일쯤)을 도시락을 먹인 아이들의 몸상태가 그리 썩 좋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1년이 아니다.
1년이 뭐야, 큰 애는 초1부터 중1까지 7년째 도시락을 먹고 있고
작은 애는 두 살 터울이니 햇수로 5년째 도시락을 먹고 있다.
이만하면 정말 날라리 엄마 중에 상날라리 엄마가 맞다.
아니지.
내가 일을 놓은 건 요 근래 들어서인 거고 당시에는 마치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살았기에 나라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겠다 하고, 센터가 그 도움을 토스해 주길래 잠자코 받은 것이니 지원을 받은 게 잘못은 아니잖은가. 그때 나는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서도 잠까지 줄여가며 또 두 번째 일을 시작했으니 만일 그때 도움을 받지 않고 엄마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라며 반찬까지 정성껏 만들어댔다면 아이들 밥상과 내 몸은 맞교환되어 지금쯤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등교했고, 야근 일정이어서 내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제 센터에서 아이들이 도시락을 안 가져오는 건 어때?"
"어?......(할 말을 찾을 수 없어 적막이 흐름)"
"도시락 용기 자체가 플라스틱인데 환경호르몬도 신경 쓰이고, 도시락에 뭐 영양소라고 할 게 들어가 있겠어? 센터에서 방학 때 점심 도시락 먹을 때는 일회용 수저로 먹을 텐데 나무젓가락도 건강에 안 좋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타당한 이유였다.
틀린 말이 없다. 그래서 대화는 양방향이 아니라 단방향으로 흘러갔다. 남편은 계속해서 도시락의 단점을 읊었고 딱히 틀리지 않는 말이니 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진작부터 나도 미안한 마음은 한켠에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하나의 솥에서 끓여 나온 도시락이든 내추럴 본에서 나온 도시락이든 어쨌든 도시락은 도시락이니 기업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낸 것이면 엄마가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든 음식에 비해 큰 정성은 빠져있을 터였다.
아이들이 컵라면 먹고 싶다고 한 마디 흘리면, 컵라면의 스티로폼 용기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얼마나 많은 환경호르몬이 용출되는지 알고 하는 소리냐며 경악을 하던 내가, 센터 도시락 중 따순 밥을 스티로폼 밥그릇에 퍼담아 가져오는 경우엔 조용히 묵인한 일도 있었고,
짜장면을 한 끼 식사로 가져온 날에는, 최적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나름 면 따로 소스 따로 담겨 있었지만 점차 흐르는 시간에 면은 불 수밖에 없으니 소스와 비비다 보면 이건 짜장면인지 짜장떡인지 분간이 안 가는 때도 있었고,
바삭한 식감으로 먹어야 할 돈가스는 플라스틱 뚜껑에 덮여 집에 오는 동안 배출된 기름을 다시 흡수하고 말았는지 눅눅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때가 더 많았다.
뭐 물론 맛있는 도시락 메뉴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좋았던 것보다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게끔 세팅되어 있는 건지 좋았던 도시락 메뉴는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김밥이나 햄버거 정도 되려나? 김밥은 한식의 범주로 넣어 좀 덜 미안하지만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라 또 미안해진다.
여러 이유로 남편이 말을 꺼내기 훨씬 전부터 나는 홀로 죄책감에 시달려왔었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엄마인데 아이들 저녁을 이런 식으로 늘 외부 기업에 맡겨 먹여도 되는 걸까. 나 너무 편안하게 사는 건 아닐까. 이럴 거면 우리 집에 엄마라는 사람(나)은 왜 있는 거지? 빨래하고 설거지해 주려고? 하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센터에서 아무리 다양한 메뉴로 돌려 막기를 한다 하여도 그 메뉴가 그 메뉴고 지난주에 먹었던 바로 그 메뉴가 또 오늘 밥상에 오르는 걸 보고 있자면 나도 물려 밥맛이 없어지는데 최신식 입맛인 너희는 당연히 물리겠지 하는 마음에 큼지막한 대바늘이 내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뜨끔했던 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도시락을 안 받는다고 가정해 보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하루 세끼를 내가 다 만들어 먹일 수 있을까?
아, 지금은 학교에서 점심 급식을 먹으니 하루 두 끼구나.
그래도 이제 곧 방학이 되면 하루 세끼...
여태껏 먹는 것엔 손을 놓고 살다가 하루에 갑자기 세끼 준비는... 암담했다.
무엇을 끊는다는 건 불편함을 수반한다.
여태껏 꾸준히 습관처럼 해온 것을 거슬러야 하니 삶의 패턴이 바뀌고 그에 따라 행동이 달라져야만 한다. 한데 저녁을 별도로 신경 쓰지 않아 왔던 안락한 삶이 내겐 익숙해도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남편이 내게 센터에서 도시락을 더 이상 받지 말자는 제안을 해왔을 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약간의 짜증도 보탰다. 엄두가 안 났으니 임파시블한 미션과도 같은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을 테다.
자기가권유를 하기 전에 엄마라는 사람이 먼저 이런 주제를 꺼내어 스스로 대화를 나누도록 했어야지 집에서 밥도 안 하고 계속 꿀이나 빨 생각하고 있었나 보네 하고 어처구니가 없었겠지.
근데 뭐 엄마라고 하루 세끼를 다 해줘야 하는 법이라도 있나?
홍콩은 아침을 주로 밖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아... 아침을 준비해야 할 엄마들이 대부분 함께 출근하기 때문이구나. 그럼 나는 요새 일을 안 하니까 아이들 밥을 챙기는 게 당연한 일이 된 건가.
일을 할 때는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상차림에 신경 쓰지 않은 걸 당연하게 여기다가 일을 하지 않는 지금은 그동안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늘 그래왔던 대로 식사 대신 도시락으로 때우는 걸 당연시하는 마음을 가졌다. 타성에 젖어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 그동안 난 너무 편케 살았다. 내 사주는 침대에서 뒹굴거릴 팔자라더니.
이제 몸을 움직여 엄마 노릇을 해야 할 때인가 보다.
그동안 도시락 먹느라 고생했다 얘들아.
집밥 좋아하는 우리 막둥이,
엄마가 해준 음식이라면 뭐든 엄지 척하는 우리 딸내미,
이젠 엄마가 정성 들여 밥을 지어 줄 테니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자.
그동안 기업의 맛이 흠뻑 담긴 도시락을 군소리 없이 먹어주어 고생 많았고, 고마웠어.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막둥이.
엄마가 정성껏 요리한 집밥 먹을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는데 먹을만한 것 없이 부실한 밥상을 보고
"이럴 거면 도시락을 왜 가져오지 말라고 그랬어?"
라고 목소리와 표정은 귀엽지만 무시무시한 돌직구를 날릴 장면이 난 왜 벌써 상상이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