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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l 02. 2024

"커피 드실래요?" 할 때 "작두콩차 주세요"하고 싶다

feat. 멜로가 체질


누군가 무엇을 권유할 때면 큰 이변이 없는 한 나는 YES를 말한다.


, 좋아요.

네, 맞아요.

암요, 그렇고 말고요.


모든 질문이 긍정의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긍정과 짝을 이루는 질문이었느냐고?

그럴 리가!


내 마음에 완벽히 쏙 들지는 않아도 대충 51프로만 마음에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경우가 잦다. 51과 49중 때론 49에 해당하는 질문이라 할지라도 그저 "네"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뭐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까짓 거 내가 대충 손해 보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예를 들어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을 때 1차로 헤어컷을 하고 염색약이든 파마약을 바른 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 경우 으레 직원은 손님에게 "커피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이럴 때 나는 긍정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그저 "네~" 하고 대답해 왔다. 커피를 타서 가져다주면 "감사합니다" 대답도 잊지 않는다.


사실, "커피 드릴까요?" 했을 때 예전의 나는 "괜찮아요"를 남발했었다.


아무리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이라지만 손님이 커피를 마시겠다고 하는 순간이 오면

미용실의 여러 약품이나 머리카락이 묻은 장갑을 낑낑거리며 벗은 후, 종이컵 꺼내야지, 커피믹스를 넣어야지, 따신 물 넣어 요래요래 휘저어 녹여야지, 나한테 가져올 때까지 쏟지 않고 조심히 가져와야지, 커피 마시기 편하도록 무릎 위 쿠션 갖다 줘야지, 커피 마시면서 심심하지 말라고 잡지도 하나 챙겨줘야지 하다 보면 마치 나는 상전, 그들은 노예가 된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돈의 노예이긴 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을 해치우며 나를 대접하는 그, 혹은 그녀에겐 귀찮은 일이 분명하므로 내향형 인간이면서 배려형 인간이기도 한 나는 늘 "괜찮아요"라는 대사를 애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괜찮아요" 대신 "네, 주세요." 하게 된 것도 실은 어마어마한 용기를 낸 것이고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한데 "커피 드릴까요?" 했을 때

"작두콩차 있나요?" 하고 되묻는 일이란 더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면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박장대소를 할 정도로 웃음이 터진다기보다 '맞아, 맞아, 저럴 때 있지. 그래, 그래 저 감정 뭔지 알지, 뭔지 알아.' 하며 공감의 웃음이 슬며시 배어 나오는 장면이 많다.  


애인과 헤어진 이유를 자세히 말해 보라는 질문에 헤어진 걸 다시 돌이키는 것도 싫은데 싫은 걸 왜 자세히이나 말해야 하냐고 하고, 어쭙잖은 충고를 하려고 하는 상대 앞에서는 이젠 유치원생도 하지 않는 아~~~ 소리 내며 귀를 양손으로 막았다 뗐다 하는 스킬을 큰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게 하는가 하면, 넘어지기 직전의 여자가 자신을 잡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걸 잡히지 않으려 살짝 비켜서며 한다는 소리가 너 때문에 자신이 다칠 뻔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극 초반 재수 없는 대사와 행동을 두루두루 일관적으로 해대느라 여념 없는 손범수 감독(안재홍)을 보며 임진주 작가(천우희)는 이런 독백을 한다.


지금 느껴지는 재수 없음은

잘 나가는 자 본연의 재수 없음인가

잘 나가지 못하는 나 자신의 시선이 만드는

가짜 재수 없음인가...


이렇듯 극에 등장하는 손범수 감독은 참으로 잘났다. 20대라는 어린 나이에 감독이 되고 두 자리의 시청률을 내내 유지하니 원래 똑똑한 데다 업적도 따라주어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가 대작가 정혜정의 작업실에 처음 방문하여 정혜정 작가가 대접의 의미로 "커피 드릴까요?" 했을 때 손범수는 흔쾌히 "네!"가 아니라 "작두콩차?"라고 말한다.


자신의 취향을 저렇게 대놓고 드러내는 자신감이라니 그의 잘났음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곧이어 자연스레 비교대상이 되어 버린 나.


내 인생이 다할 때까지 저런 자신감의 표출이 과연 가능은 할까 싶다.


보통의 우린

좋은 게 좋은 거고, 모난 돌은 정을 으며, 주변의 풀보다 성장이 남달라 웃자라면 베임을 당하는 잘 꾸며진 정원의 앉은뱅이 나무들에 불과할 뿐이니까.



하지만

나의 취향이나 의견은 이렇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세상은 좀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다. 나의 생각은 정반대에 자리하지만 상대를 배려한답시고 무조건 예스라 답한다면 무척 재미없는 삶이 될 것은 물론이고 질문조차 필요 없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나의 생각과 다른 상대의 말을 열린 귀로 들음으로써 사고의 확장도 가능하다. 또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됨으로써 지적 채움도 가능하다. 내 주장만 옳다 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반대되는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조율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풍요로운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고, 옳은 길로 바로 들어설 수는 없다 해도 점차 슬기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무조건 네네 하는 것보다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도 갖고 싶다.

앞으로 나도 그래봐야겠다.




문턱에 걸려 넘어진 작가가 용수철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난다. 작가를 보며 손 감독이 "다칠 뻔했어요...!" 하니 둘이서 저런 액션을 ㅋ (나?...... 아니... 나!)




임 작가가 친구들에게 손 감독의 재수 없음을 게거품을 물고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일단 네가 잘 나가 봐...

그때도 재수 없으면... 본연의 재수 없음이지...





*근데 작두콩차는 어떤 차야?

작두콩깍지를 우려낸 차를 말하며 구수한 맛은 둥굴레차와 비슷하고 비염과 감기에 효능이 있다. 특히 콧물을 멎게 하고, 카페인이 없으니 임산부나 어린이들이 마시기에 좋다. 과다섭취 할 경우 복통과 설사가 일어날 수 있다. (뭐든지 정량이 아니면 문제가 일어날 수 있으니 하루에 두 잔 정도가 적당하다.)


**덧붙임.

드라마가 너무 마음에 와닿는다 극찬해 놓고 작가의 이름을 쓰지 않는 우를 범했다. 극본은 이병헌 감독과 김영영 작가가 썼고 사람들이 어찌나 이 드라마의 대사를 좋아하는지 대본집이 벽돌책으로 나왔을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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