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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l 13. 2024

시대를 너무 앞서간 선물 요구법


나에겐 사이다 같은 친구와 결명자차 같은 친구가 있었다.

나는? 나는 뭐라 해야 할까... 그래, 물과 같다고 해야겠다.


사이다를 닮은 친구(이하 사이다)는 매사에 톡 쏘는 성격이었다. 뚜껑을 바로 딴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면 코가 매워지는 것처럼 그 친구는 방금 딴 사이다같이 항상 톡 쏘아댔다. 초등생(이라 쓰고 국민학생이라 불리는)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주관이 이미 뚜렷한 친구라서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릴 때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이번 생이 혹시 2회 차인가 싶을 정도로. 매사에 직격타를 날리는 사이다를 두고, 사이다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들은 "쟤 좀 이상해." 하며 흉을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이다와 절친이었던 나는 사이다의 허물을 덮고 두둔하려 애썼다. 하지만 사이다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 대신 "야, 그렇게 하는 거 아냐. 나와 봐. 이렇게 해야 하는 거지."하고 면전에 대고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사이다는 도대체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모르는 걸까. 왜 저럴까, 싶으면서 나까지 함께 민망해지곤 했다. 아픈 엄마를 두고 걱정하는 초등 시절의 나에게 위로랍시고 한다는 말이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돼있어."라고 말한 그 아이. 내가 사이다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반면에 결명자차를 닮은 친구(이하 결명자)는 참 순한 친구였다. 주변의 상황을 보고 상대의 표정을 읽고 자신의 의견은 좀 뒤로 놓아 구수한 맛으로 모든 걸 포용하고 싶어 하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결명자와 함께 있으면 또 다른 나와 함께 있는 듯해서 나의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이다는 물 같은 내가 의견을 내세우면 내 의견에 희석돼 탄산이 수그러질 만도 한데 강력한 탄산은 물인 내가 무색해질 정도로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물 따위 탄산에 빨려 들어가 기포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한데 결명자와 함께일 때는 결명자의 의견이나 나의 의견이 거의 흡사해 마찰이 거의 없었다.


각자 색다른 매력이 있는 거겠지.

어찌 사람이 다 같을 수 있겠어.

나름의 특별한 고유 성향일 거라며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한데 결혼을 얼마 앞두고 사건이 터졌다.



초, 중, 고 학창 시절을 같이 마치고 셋 다 다른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우리 셋 중 가장 늦게 결혼할 것 같았던 사이다에게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나 결혼해."


그리고 20년 지기 친구인 결명자에게 사이다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한테 선물해 줄 건 OOOO인데
이거 시리얼 넘버는 띠리리 띠리리리야


선물 내놔


시리얼 넘버라니...

무려 시리얼 넘버라니...



새중간에 끼어 참 난감했다. 그 둘은 사실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나로 인해 사이다와 결명자, 둘의 친분이 생겼던 거였다. 초등학교 어릴 때부터 동창이어서 누가 누굴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게 큰 상관이 있으랴마는 둘의 성향은 매우 달랐기에 내가 아니었다면 그 둘은 아마 친구가 되지 않았을 확률이 5만 8천 프로는 넘을 거라는 확신이다. 시간이 흘러도 둘의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메우기도 쉽지 않았다. 사이다는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라 돌직구가 다반사였고, 그에 반해 결명자는 상대의 마음이 행여 자신 때문에 다칠 일이 생길까 늘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둘의 성향을 속속들이 모두 알기에 가운데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사이다는 결명자를 조금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명자는 사이다가 너무 제 고집만 내세운다고 생각하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 결혼을 얼마 앞두고 이렇게 사달이 나고야 만 것이다.

앞뒤 다 잘라먹고 다짜고짜 시리얼 넘버를 날리다니...


사이다는 직구를 날려도 너무나 흐트러짐 없는 곧은 직구를 날리고 말았다. 매우 직접적이고 단도직입적인 대화방식이었다.


선물이란 자고로 선물을 해줄 사람이 받을 사람을 떠올리며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도 하고 이 선물을 받고 행복해할 상대의 모습을 떠올리며 같이 행복해지는 게 의미가 있거늘...


결명자의 푸념과도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해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데 직접 들은 당사자인 결명자는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당시엔 MBTI라는 게 없어서 "T발, 너 C야?"라고 속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물론 친구들 마음대로 선물하도록 자율로 맡기면 선물이 중복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결혼 당사자가 필요한 목록을 정하고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을 지정해 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툭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서로가 편하고 효율적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보긴 했지만 그것과는 상황이 사뭇 달랐다. 나의 결혼식에 너의 귀한 시간을 내서 오는 것도 너무 감사한데 선물까지 바라도 될까 하는 고마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미리 맡겨둔 물건 돌려받듯 내놓으라는 식의 말은 내가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어울리지 않더라도 살가운 목소리를 장착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정에 담뿍 담아 예쁘고 더 예쁘게 "나 신혼집에 OOOO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혹시 선물 뭐 할지 고민되면 그걸로 해 줄 수 있어?" 하고 상대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의중을 확인한 뒤, "어떤 게 좋겠어?"하고 되물었을 때 그제야 자기가 봐 둔 게 있다며 시리얼 넘버를 읊어줘도 될 텐데 무 자르듯, 대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금하는 모양새로 시리얼 넘버를 뱉고 본 그 친구의 처사에 우리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혼 선물이든 무엇이든 친구 입장에서 이 친구가 원하는 건 뭘까 고민해 보며 고르고 또 고르며 선물을 해 주는 의미가 컸지, 선물 리스트를 대대적으로 뽑아놓고는 너는 이거, 너는 저거, 마치 함수 매칭하듯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컸던 시대였다. 무려 20여 년 전이었으니. 물론 요새는 자신의 의사 표현을 당당히 하는 게 대세 중에 대세가 되었지만 당시 그건 굉장히 어색한 것이었다.


결국 그 이상함과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결명자와 나는 그 친구에게 선물만 보내고 결혼식에는 걸음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해 후 나의 결혼식날. 역시 나의 예상대로 사이다도 오지 않았다.

내가 선물만 보내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그 친구도 내게 똑같이 갚은 것 같다. 아마 그 아이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모르고 나에 대해 괘씸하다고만 생각하고 있겠지.


상대에게 무언가를 받을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곤란하다. 특히 선물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그 아이가 지금쯤은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받을 때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당연한 표정으로 당연한 태도로 무언가를 받는 걸 멈추었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사이다는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콜라나 탄산수와 어울리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도 없이 잘 살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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