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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18. 2024

선생님, 저희 딸 혹시 포기한 건 아니시죠?

참 여러 생각이 들어요. 학부모니까요.

딸아이 담임선생님은 남자입니다




딸아이가 초등 어린아이 티를 벗고 중 1이 된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벌써 내일이면 2학기 시작이다. 쏜 화살처럼 시간 참 빠르다.

매년 1학기에는 늘 빠지지 않고 한 번은 꼭 있어야 하는 학교 일정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학부모 상담이다.


코로나 그 조심스러운 기간에도 상담은 빠뜨리지 않았고 대면할 수 없다면 비대면 전화 상담으로라도 꼭 했었는데...


이번엔 학교로부터 딸아이 상담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다.




3월, 중학교 입학식을 하고 첫날.

아이의 가정통신문과 담임선생님이 별도로 보낸 안내문을 읽고 살짝 놀랐다. 적혀 있는 담임선생님의 성함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 누가 봐도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고 연락처를 폰에 등록하자 역시나 프로필에 남자 사진이 떴다. 그동안 6년간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모두가 여자선생님이었다. 동성이라는 점이 작용했는지 상담전화를 할 때면 처음 대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대화에 불편함은 크게 느끼지 않았다. 좀 유쾌한 선생님일 경우에는 대화가 무척 재미있다 못해 마치 알고 지내는 언니와 수다 떠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웃음코드가 제대로 맞는 선생님을 만났을 땐 웃기기 배틀이라도 붙은 듯 서로 이야기하다가 둘 다 포복절도하는 상담전화에 나는 지금 상담을 하는 건가, 수다를 떠는 건가 헷갈린 적도 있었다. 상담인지 수다인지 모를 전화를 끊고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가끔 심심하면 선생님께 전화데이트를 신청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이번 선생님은 남자선생님인 것이다.

음... 그래. 남자선생님이라는 거지.


나의 주특기인 상상의 나래를 편 후, 잠시 상담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곧이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는 예상대로 너무 적응이 안 되었고 너무 어색한 나머지 나의 목은 놀란 자라처럼 양 어깨 사이에 쑥 파묻혔다. 직접 학교에 찾아가 상담할 것도 아니고 그저 전화통화만 떠올렸는데도 그랬다. 남자가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임에도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나는 처음 대하는 사람의 성별이 우선 남자라고 하면 괜히 쭈뼛쭈뼛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더구나 초등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아이의 이모저모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물어보고 싶고 알고 싶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남자라는 것 때문에 나는 어버버버 질문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이 일었다. 하아... 선 보는 것도 아닌데 진짜 왜 그럴까. 나 미쳤나 봐. 


한참을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하던 중, 4월이었나 마침 내가 정한 상담일에 학교행사(체육대회)가 겹쳤고 전화 상담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으로 미뤄지게 된 것이다.

매우 어색할 텐데 잘 됐다 싶었다. 우선 그 상황을 넘겼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일주일쯤 후에 새로 날을 정해서 연락을 주시겠지 했는데 한 달이 흘러도 언제 상담하겠다는 안내는 오지 않았다.





좀 서운했다.

우리 딸아이가 학급에서 좀 존재감이 없는 아이인가. 어느 쪽이든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라면 조회 종례시간 그 아이 얼굴을 맞닥뜨릴 때마다 상담 전화를 안 했다는 것이 떠오를 것이고 뒤늦게 전화를 주실 만도 한데 어찌 이리 조용하담...


딸내미에게 담임 선생님이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시더냐고 물었지만 "응, 안 하시던데."라는 말만 돌아올 뿐 그렇게 하루 이틀 야금야금 시간은 흘러 여름방학이 되고야 만 것이다.



2학기가 시작되면 상담전화를 달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보통 1학기때 상담을 하지 2학기에는 상담일정이 없기에 그건 좀 이상한가 싶으면서도

또 막상 전화 오면 특이사항을 이야기할 것도 없으면서 괜히 상담한다고 바쁜 선생님 시간을 뺏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맘 편케 상담 안 하고 넘어가자니 딸아이에게 관심이 1도 없는 엄마로 비칠까 상담을 안 할 용기도 없다. 그놈의 타인의 시선은...



길어야 15분 남짓할 상담 전화 하나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그냥 카톡으로


"선생님 우리 딸아이 상담을 1학기에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 짬 나실 때 연락 한 번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착 보내면 깜빡 잊고 있었다고 죄송하시다며 답이 재깍 올 테고 그렇게 몇 마디 나누면 끝날 일을 이렇게 장황하게 글로 고민하는 나는 정말, 내가 봐도 특이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처음엔 어찌해야 하나 마냥 고민만 되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해결책이 보이네.

이래서 글을 쓰면 정리가 된다고 하는가 보다.


월요일은 개학날이니 선생님들이 매우 바쁘신 날일 테고 화요일엔 연락 한 번 드려봐야겠다.


남자면 뭐 어때. 그냥 남자 사람 선생님일 뿐이다. 뿐이다. 뿐이다. 생각하면 되지. 아... 그래도 뭔가 좀 쑥스럽다. 진짜 미쳤나 봐. 


글로는 매우 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낯을 제법 가리는 조용한 INFP의 하등 쓸데없는 고민 나부랭이 끄읕~~~





**누군가는 "걱정도 팔자다." "참 쓸데없다." 생각하고 넘길 일이겠지만 아니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는 일일 테지만, 이런 것도 고민이라고 몇 날 며칠을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세상은 넓고 사람은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독자님들이 알게 되신다면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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