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포르투의 크리스마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예전만 하지 않다고들 한다.
어렸을 적 기억에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동네 골목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신 풍겼다..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었고, 거리는 괜히 들떠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모두가 느끼듯 그 분위기가 덜해졌다. 불경기로 골목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미는 것도 돈이고 부담일 테고, 안 그래도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나서기도 힘든 상황일테다.
대신 사라진 거리의 크리스마스는 유명 백화점이 대체했다.
12월 즈음이 되면 백화점 앞은 앞은 사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골목상권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마저 대기업 백화점에게 뺏겼다. 덕분에 백화점에 갈 일이 적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는 이제 TV속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정이 시들해질 때쯤, 이렇게 유럽의 크리스마스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기독교 문화가 깊게 자리 잡은 탓인지 유럽인 스스로가 크리스마스 장식에 진심이다. 거리의 가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쇼윈도를 꾸미고 크리스마스 장식과 소품들로 진열대가 가득 채워진다. 이 중 유럽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단연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유럽의 거리는 화려한 조명과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가득 찬다. 포르투갈도 도시의 빈 공간은 거의 대부분 크리스마스 마켓이 차지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유럽에서 가장 큰 소비가 이루어지는 시기다. 연말 쇼핑, 공연, 마켓 방문 등으로 인해 관광업과 소매업이 활기를 띠며, 연말 분위기를 만끽하려는 방문객들로 도시는 북적인다. 특히, 크리스마스 마켓은 지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켓은 지역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감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켓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덕분에 이 시즌엔 유럽 전체가 여전히 축제분위기다.
유럽 정부와 지자체도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지자체와 정부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도시 전체를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특히 크리스마스 마켓 운영을 지원한다. 대신 상점의 외관을 통일하여 전통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하는 등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으로 규제한다. 그래 서인지 내가 갔던 포르투갈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대부분 비슷한 디자인(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의 상점이었다. (입찰에 성공한 업체는 소위말해 로또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우리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전통문화를 활용하고 보존하며, 현금지원 등 선심성 정책 대신 최소한의 마중물 정책으로 소상공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여 그것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다만 시민의 의지가 중요하다.
정부만 탓할 것이 아니다. 전통시장에는 수조 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된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전통시장 현대화와 유통기능 개선에 1조 6천억 원이 투입되었다. 이후에도 전통시장 지원액은 지속 상승세다. 이에 힘입어 일부 시장은 명소로 거듭났다. 서울의 광장시장이나 통인시장, 부산의 국제시장이나 자갈치시장, 제주의 동문시장 등이 그렇다. 이들이 살아난 이유는 상인들의 적극적인 의지 덕분이다. 정부 지원을 충분히 활용하고 상인회에서 진보된 관점으로 노력하여 성공적인 시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시장들은 정부의 돈만 바라보고 있다. 밑 빠진 독이다. 아무리 수백, 수조 원의 돈을 쏟아부어도 상인들의 의지가 없다면 안된다. 유럽도 유럽인들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성행할 수 있었다고 본다.
즉, 정부와 지자체는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낚시를 가르쳐야 하고, 정책 수요자는 물고기를 달라기보다 낚시를 가르쳐 줄 때 열심히 배워야 한다. 이 둘이 있어야 정책이 완성되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
나는 크리스마스가 참 싫었다.
한때 우리나라는 크리스마스에 집에 있으면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했다. 아마 중학생 때였나, 부모님과 크리스마스를 즐기기엔 너무 커버렸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을 즈음, 갑자기 크리스마스임에도 집에서 혼자 TV나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싫고, 불편했다.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엔 집에서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나 생일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 날엔 숙제처럼 약속을 잡았다. 숙제 같은 약속이었기에 누군가의 만남 또한 숙제같이 불편했다. 그래도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단 나았다.(고 생각했다.) 약속을 잡지 못한 날엔 그냥 밖을 혼자 걸었다. 집이나 기숙사에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사실 그런 내 모습을 가족이나 룸메에게 들키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들키느니 밖이 아무리 추워도 몇 시간이고 걸었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서. 나는 그때도 외부로 보이는 나를 포장했다. 그래서 걸으면서도 쓸쓸했다.
결혼하면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포장하지 않은 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 배우자다. 결혼 이후엔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생일 등 특별한 날에 약속을 잡지 않았다. 특별한 날을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은 내 삶을 굉장히 안정적이게 했다. 그때부터 다시 크리스마스와 내 생일이 다시 좋아졌다. 아무 부담 없이 아내와 조용히 하루를 축하하는 것이 소소하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