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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구석구석이 작품이다.

#7. 포르투의 건축과 렐루서점

by 라헤 Feb 18. 2025

렐루서점과 빅토리아 전망대를 거쳐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포르투는 특정 유명한 관광지나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도시가 아니다. 포르투의 관광은 도시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길을 잃기도 하면서 도시의 건축과 사람들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가장 좋은 여행 방법일 것 같다. 아, 물론 전편에서 밝혔듯 동루이스 다리와 모루정원은 꼭 가야 한다.


렐루서점에 붙은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다.

렐루서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색 계단이다. 이미 사진과 각종 매체로 수없이 봐왔지만 실제로 볼 때의 색감과 규모는 또 다르다. 실제 내 눈으로 본 보정되지 않은 이 계단에는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사람의 손과 발이 닿는 부분에는 색이 바랬고, 움푹 꺼진 곳도 있었다. 건축가가 계단을 처음 만들었다면, 세월이 이 계단을 완성시키는 것 같다. 둥글게 2층까지 이어진 계단은 그 모양이 하나의 조각처럼 보였다. 그래서 1층 공간 한가운데 계단이 위치하면서 공간의 개방성을 저해했음에도, 답답함 보다는 멋스러움이 먼저 느껴졌다. 심지어 공간 활용도 측면에서 제법 효율적으로까지 보였다. 나중에 2층 집을 짓게 되면 이러한 모양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앤케이 롤링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이 계단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움직이는 계단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렐루서점은 이 계단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시선이 머무는 곳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예술이었다.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해 벽면의 문양과 책장 장식 등 어느 한 군데 허투루 쓰지 않았다. 우드 톤의 차분한 바탕 혹에서 구석구석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것에서 인테리어의 센스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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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올려다본 천장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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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장식 하나하나가 섬세하다. 붉은색 크리스마스 장식이 붉은 계단과 제법 어울린다.

렐루서점에는 한강 작가도 있다.

한강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래서인지 렐루서점을 비롯한 내가 방문한 포르투갈 서점에는 모두 '한강 컬렉션'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비행기에서 읽은 '소년이 온다'는 없었지만 아쉬운 대로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채식주의자를 구매했다. 물론 평생 읽지는 못하겠지만 책장에 꽂힌 이 책을 보며 오래오래 이날을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강 컬렉션이 있었다. 국뽕에 차올랐다.한강 컬렉션이 있었다. 국뽕에 차올랐다.

포르투갈은 골목 구석구석이 관광지다.

렐루서점을 나와 전망 포인트로 알려진 빅토리아 전망대로 향했다. 빅토리아 전망대는 가는 길도 어둑어둑하고, 전망대도 정돈된 장소라기 보단 건물을 철거한 공터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없고 대낮인데도 안전한 장소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이 또 포르투갈의 감성인 것 같다. 또, 아무도 없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포르투 시내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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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건물이 있는 전망대, 그래도 전망은 예쁘다.

전망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도 참 예뻤다. 건물 색 하나하나가 다채롭다. 집주인이 본인 취향대로 타일 색을 정했을 텐데 톤이 비슷해서 그런지 인접한 건물 간의 색 조합이 좋다. 포르투는 알려진 관광 포인트를 찾아가기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길을 잃으면서 건물과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적절한 관광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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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는 다채로운 색의 타일과 벽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외벽은 두고, 내부만 철거한다. 도시 경관을 위한 노력이다.외벽은 두고, 내부만 철거한다. 도시 경관을 위한 노력이다.

도시는 예쁜 게 최고다.

포르투에서 길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재건축 중인 현장을 봤다. 특이한 점은 외벽은 두고 내부만 바꾼다는 점이었다. 도시의 아름다운 미관 유지를 위한 노력이었다. 물론 관광 산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정부에서 규제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건축은 대부분 부지에 딱 맞춰 네모 반듯하게 만든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로 채우기 위한 설계이다. 또 아무리 창의적인 건축이라도 각종 건축 위원회를 거치다 보면 모든 건물은 가장 효율적인, 어디서 본 듯한 건물로 바뀐다. 그래서 도시의 특색이 없다. 부동산을 오로지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예쁜 게 뭐가 중요해. 땅값 오르는 게 중요하지.” 따위의 말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포르투갈의 관점은 새롭게 다가왔다


(추가 여행 팁)


렐루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서점이다.

그 이유는 렐루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예약 사이트 링크는 아래와 같다. 예약 후 프린트해서 입구 앞 직원에게 보여주면 스캔 후 입장할 수 있다.

https://www.livrarialello.pt/

티켓은 Silver(10유로), Gold(15.95유로), Platinum(50유로)로 나뉜다. 차이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비쌀수록 줄을 서는 시간이 줄어든다. 서점 입구로 가면 Silver, Gold, Platinum 줄이 나뉘어 있다. 내가 갔을 때는 비수기+이른 아침+궂은 날씨였음에도 Silver는 줄이 꽤 길었다. 그에 반해 Gold 줄만 해도 Silver의 1/10 수준이었다.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들은 Gold 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여유로운 여행객이었기 때문에 기다렸다. 실제 기다리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서점 입구로 들어가면 또 기다란 줄이 있다. 서점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계단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다. 사진 줄은 금방 줄어든다. 그 이유는 사진 찍을 때 알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계단에 올라서면 우리 시선 아래로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 중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올려다보고 있다.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이때 민망해서 아무렇게나 급하게 사진을 찍기 마련인데, 나중에 보면 무조건 후회한다. 꼭 미리 포즈를 연습해 올 것을 추천한다.


많은 사람들은 렐루서점에서 해리포터나 어린 왕자를 산다. 영어로도 읽기 쉽고, 워낙 유명한 책이면서 표지가 예뻐서 인 것 같다. 렐루서점에서 책을 사면 입장료만큼 할인해 주며 렐루서점 컬렉션이 별도로 있어 이곳의 방문을 추억할 수도 있다. 이곳을 더욱 추억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포르투갈어로 된 책을 사는 것을 추천한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영어책보다 포르투갈의 렐루서점에서 산 포르투갈어 책은 잘 구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렐루서점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모두가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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