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꼽는 대학만 나오면 다 잘될 줄 알았지
신입사원 초봉으로는 꽤나 과분한 7000만원, 조금만 더 버텨서 대리 직급을 달면 1억, 은퇴할 즈음엔 1억 5천가량을 받는 좋은 회사를 퇴사하는 날에 나는 눈이 시뻘게진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책상을 치우고 있었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서 대기업을 퇴사할 때까지의 나는 폭주족처럼 부아앙소리를 내며 달리다가 속도에 못이겨 벽에 처박혀버린 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쉼을 직업으로 삼아 매일을 느긋하게 보내고 있다. 가끔 날라오는 쿠팡의 애절한 구인문자를 보며 '훗, 이렇게나 애걸복걸하다니..'하고 짝사랑이 티나는 후배에게 미소를 날리는 꼴같잖은 선배처럼 군다.
현재 나를 소개하는 말은 '자발적 쉼을 선택한 일용직 노동자'이다. 퇴사하기전까지 내가 삶을 살아온 궤적을 하나씩 두드려보고 조금은 멈춰서서 젊은 나날의 시간을 빌게이츠가 된 것마냥 아낌없이 써보는 중이다. 뉴스에서는 자발적 쉼을 선택한 청년들을 사회의 문제이자 골칫덩이로 보도하지만, 직접 그 뉴스의 당사자들이 나오진 않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문제라고 생각하면 인터뷰라도 하든가. 똑같은 뉴스를 복제해서 몇년째 무한생성하는 꼬라지를 보니 핸드폰에 오는 스팸전화마냥 짜증이 났다. 직접 나서서 자발적 쉼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적어보려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폭주족처럼 달리기 시작한지는 정말 오래되어 관성처럼 이어져왔다. 시동을 걸어 질주한 시점은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된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대학입시카페에서 서로서로 어느 대학이 높니 낮니 싸우는 와중에
나는 그래도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옥같은 입시생활을 견디고 버티며 합격증을 받아냈을때는 합격의 기쁨보다는 말 그대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더이상 재수학원에서 내 이름이 모의고사 상위랭킹에 있을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공부하다가 코피 흘릴 때는 '수능날에는 코피 안났으면 좋겠다.. 시험지 바꾸는데도 시간걸릴텐데'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서 마음이 놓였다.
좋은 대학교에 가면 인생이 편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유는 고통스러웠다.
자유는 내가 무엇을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인 만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따분하고 외로운 자유를 벗어나 새로운 도파민자극을 얻고 싶어서 대학교 MT를 신청했다. 대학교에는 나만큼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더이상 공부는 나만의 매력이 아니게 되었다. 대학교MT에서 연예인처럼 예쁜 친구들에게만 소개팅, 미팅제안을 하는 선배들때문에 나는 술기운과 수치심으로 홧홧한 열이 올라 혼자 구석탱이에서 '시발새끼들'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MT가 끝나길 기도했다.
얼른 다음 스텝인 취업을 통해 내 지루한 자유가 구속당하길 기대했다. 그 바람은 어느 새 이뤄져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당당히 커피 한잔 사드는 직장인 라이프로 부릉거리며 질주했다.
이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돈을 주고 앞으로 미래의 30여년의 자유를 바치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나는 내가 매춘부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일반노동자나 매춘부는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착취당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둘다 똑같다고 본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노동과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글쓴이 인성쓰레기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왠 매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하는 첫사랑과 약 8년째 연애 중인 지고지순한 사랑꾼이다. 그러나 장기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기싫은 섹스를 억지로 해야할때가 있다. 보통 의무방어전이라부른다. 나는 매일매일 하기싫은 섹스를 하러 알람시계를 끄고 지하철 빽빽한 사람들틈에 몸을 맡겼다.
여느 날처럼 거짓신음소리를 내러 출근하는 길에, 나는 내 친구 디오게네스를 떠올렸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내가 거지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디오게네스의 일화는 이렇다. 알렉산더 대왕이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와 원하는 것을 들어줄테니 말해보라고 한다.
누더기 옷을 입은 디오게네스는 통나무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이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주었으면 좋겠소. 그것이 내 소원이오.'
나는 저 행복한 거지 철학자처럼 되고 싶었다. 직장인이던 나는 뜨겁고 빨간 분노의 감정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주변에서 손을 갖다대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주전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저 차갑고 시원한, 원하는 게 눈부신 햇볕뿐인 고고한 거지가 되고 싶었다. 시한폭탄처럼 언제터질지 모르는 상사의 폭언과 꼬여버린 뜨개실처럼 얽힌 업무들이 더더욱 저 거지철학자를 워너비로 만들었다. 결국 마음속에 삼켜뒀던 퇴사를 실행에 옮겼다. 간단했다. 사직원을 프린트해서 사인만 하면 된다!
퇴사를 할 당시에 나에게 연락오는 동기들의 궁금증과 선망어린 눈빛에 나는 당황했다. 그들은 어떻게 퇴사할 용기가 났냐고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언제 죽을 줄 알고 하기싫은 것만 꾸역꾸역하고 사나? 어떻게 이 친구들은 55세까지 이 지긋지긋한 애새끼같은 상사들과 씨름하기를 매일 아침 선택할 수 있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각자의 인생의 무게가 있어서 매일 아침 출근 vs 퇴사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선택하겠거니 생각한다.
퇴사 후 다음 스텝은 교과서에서도, 수능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 허허벌판 모래사장에서 흙더미를 쌓아보기 시작했다. 하고싶은 육체노동을 하면서. 하기싫은 섹스를 하는 정신적 매춘부가 아닌, 내가 일하고 싶을때 허벅지와 팔 힘을 쓰는 쿠팡의 육체적 매춘부(?)가 되기로 했다. 나를 먹여살리는 최소한의 노동을 하면서 앞으로의 30여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쉼의 방법을 고민하기로했다. 쉼은 사람마다 다양하기에, 형형색색의 빛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부터 나만의 청량하고 즐거운 자발적 쉼을 소개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