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긴 박사과정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대학원 연구실에 있기도 했고, 짧게 직장에도 다녔고, 기간제 교사도 했다.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한 후, 논문을 제본해서 대학교 은사님께 드리러 갔을 때, 은사님은 나에게
“너가 졸업을 한 건, 미라클이야!”
라며, 눈을 찡끗 웃으셨다.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그 교수님은 나에게
“과연, 축하해 줄 일인지 모르겠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결국에 나의 기적같은 졸업을 축하해 주셨다.
학부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을 때에는 내 인생 앞에 그렇게 지난한 박사과정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공부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학원에 가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학부과정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한 나는 하나의 과정을 완성하고 싶었다. 대학교 교재 내용 중 모르는 내용이 많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학부과정을 졸업을 한 후, 취직하지 않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점심 때가 되면, 집에 가서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며 쉬었다. 내가 바라던 삶의 형태가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뭐 저런 애가 있나 하며 어처구니가 없어하셨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요즘에야 연구비를 학생에게 주는 대학원이 많아져서 굳이 대학원 등록을 할 때,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대학원을 희망했던 그 시기에는 돈이 없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취직을 해야 했다. 공부 좀 한다했던 선배들은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유학을 갔다. 유학을 간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귀국 후 모교에 돌아와 교편을 잡거나 삼성에 취직하는 것이 성공한 케이스였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 진학에 실패한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신문에 난 조그만 구인 공고를 보고 작은 출판사에 이력서를 냈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탓인지 어려움 없이 취직을 했고, 쓰디쓴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돈 천원을 놓고 늘 다투셨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직장을 쉽사리 그만둘 수가 없었다. 다섯 식구 중,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런 탓인지 첫 월급을 어머니에게 드리지 않은 것을 두고, 어머니는 끊임없이 비난을 하셨고 월급 통장을 가져가서는 주지 않으려 하셨다. 그런 어머니와 다투어, 나는 나의 월급 통장을 되찾았다. 그리고 나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대학원 시험을 봤다. 합격을 했고, 그리고는 직장을 그만 두었다. 직장을 그만 둔 날, 해방감에 즐거울 줄 알았으나 막막한 불안함에 심장이 두근거혔다.
직장을 그만 두고 난 다음날 나는 출근을 하듯이 집을 나와서 도서관으로 갔다. 일주일 내내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도서관에서 퇴근을 했다. 도서관의 책 속에 파뭍혀 원없이 책을 읽었다. 집에서는 내가 퇴사를 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핸드폰이 없었다. 학교 인적 사항의 연락처에는 집의 유선 전화 번호를 적어야 했다.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퇴근하듯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난 걸 모르는 척하려 했는데 대뜸 어머니가
“너, 대학원 갔냐?”
라고 물으셨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알고 보니 대학원 사무실에서 나에게 전달할 말이 있어서 집으로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나의 외로운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와의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고,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한 나는 점점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도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시간 강사를 하면서 논문은 밤이 되어야 쓸 수 있었다. 시간 강사라서 시간의 자유가 있었을 것 같지만, 주 25시간의 고된 수업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어렵게 잡은 공부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수업을 저녁 6시에 마치면, 그대로 대학원 연구실로 가서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했다. 집에 돌아오면 새벽 3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다음날이면 아침 7시에 출근을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노력한 결과, 졸업 논문을 저널에 낼 수 있었고, 국제학회에서 발표도 했다. 그리고 바로 박사과정에 입학했어야 했다. 그러나 지원 기간을 놓쳐서 9월 학기가 되서야 박사과정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등록금을 냈다. 그러고 나니 나의 통장에는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통장의 잔고가 없다 보니, 상실감에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등이 시렸다. 아무리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도 등이 시려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석사과정 동안, 체력이 너무 많이 소모된 탓인지 그전에는 하기 쉬웠던 일들도 잘 할 수가 없었다. 집에 가는 길이면, 배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응급실에 들러 진통제 주사를 맞곤 했다. 소화가 안되서 내과에 소화제 처방을 받으러 갔다가 초음파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쓸개에서 담석이 발견되어,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았다. 몸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아니 하지 못했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공부를 하려 했을까?’
‘물리를 선택한 것은 잘 한 일일까?’
‘결혼을 해서 한 사람의 아내로 사는 게 더 의미가 있는 삶이 아닐까?’
박사과정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설명하시는 내용이 점점 귓가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교수님이 칠판에 적는 수식들이 그 의미를 잃었고, 그저 알 수 없는 기호의 나열일 뿐이었다. 연구실 미팅 시간에 학생이나 포닥이 발표하는 내용이 마치 외계어처럼 들렸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 것일까?’
그러면서 내 나이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어떤 대학 동기는 연봉 1억을 받는다고도 했고, 고등학교 동창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친구들이 모이면 어떻게 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친구들이 불러서 모임에 나갔다가 오면, 친구들의 삶과의 괴리감에 괴로웠다.
연구실에서의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려 할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절감할 뿐이었다.
박사과정 3학기가 되자 과연 내가 친구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낙오자가 되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돈이라도 벌자.’
결국 휴학을 했다. 말이 휴학이었지, 그만둘 생각이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출판사에 이력서를 냈다.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보신 분이 나의 이력서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일하기에는 능력이 많은 것 같아요.”
난, 나의 어정쩡한 이력이 원망스러웠다. 한 출판사에 다행히 합격을 하였으나, 오랜 시간 편집을 하지 않았던 탓에 일을 잘 할 수가 없었다. 공부도 못하고 일도 못하고 어떤 것 하나 잘 하는 것이 없었다. 무슨 용기에서인지 기간제 교사에 지원을 해서 기간제 교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공부를 마쳐야 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랬다. 한번 시작한 공부는 마무리를 맺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당시, 휴학 기간 만료로 퇴학이 된 상태였다. 퇴학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더 이상 등록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대학원 행정실에 문의를 해 보니, 재입학이 가능했다. 그래서 다시 복학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물리학은 수식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수식을 잘 풀어낼 수가 없어서 과제에 손을 대지 못하고 망연자실할 때가 많았다. 실험을 하기 위해 입자물리 연구소 cern에 가게 되었을 때의 내 나이는 어느덧 마흔살이 넘어 있었다. 읽어야 하는 논문이 많았다. 그 생각에 밥을 먹을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급하게 허겁지겁 먹다 보니, 버릇이 되어 아직도 밥을 천천히 먹지 못한다. 논문 주제를 몇 번이나 바꿔가며 마침내 졸업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나이가 쉰 살이 넘어서야 졸업 논문을 쓰고 마침내 졸업할 수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엄, 누구든 박사과정에 입학하면 한 번쯤은 후회가 들 수도 있고, 자신감이 떨어져 연구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결론은 한번 공부를 시작했으면, 졸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박사과정에 입학한 분이 계시다면 처음 생각과 달리 공부가 그 의미를 잃었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기를 바란다.
논문을 쓸 때에는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 본인 이외에 그 논문의 결론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그전에 가졌던 모든 의구심이 사라지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