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물리학과에 들어왔니?

by 봄날

대학에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물리학과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었니?”

“고등학교 때, 물리를 잘 하지 못했어, 물리를 잘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공부를 하다 보니, 교수가 되었네.”


과학을 선택하라!

나는 수능을 보지 않았다. 학력고사라는 시험 제도가 있을 때, 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심야 TV 프로를 즐겨 보았는데, 어느 날엔가 토크쇼에 학력고사 최고점자들이 게스트로 나온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학력고사를 가장 잘 본 학생에게 진행자가 어느 학과에 진학할 예정이냐고 묻자, 그 학생은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물리학과 가야죠.”

라고 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 토크쇼를 본 후로, 물리학을 생각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물리학과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요즘처럼 과학을 선택해서 배우지 않고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을 다 배워야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학력고사 시험을 볼 때, 과학 4가지 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가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물리를 선택하라고 하지 않았다. ‘물리를 공부해야 과학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화학을 추가로 선택했다. 그런데 결코 물리를 잘 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물리를 공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고3이 되어 물리 첫 시간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데,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순간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물리를 선택했으니 물리 시험을 잘 봐야 성적이 잘 나올텐데, 첫 번째 수업 시간에 느낀 당혹감으로 미래가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중간고사 기간이 되어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는데, 교과서에 나와 있는 공식이 어떻게 유도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공부를 포기하려니 시험을 안볼 수는 없고, 공부를 하려고 할수록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운동량 보존 법칙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을 거의 하지 않아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인데, 그때에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뻐가 저릴만큼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리학과 입학

대학교 입학 때가 되자, 오기가 생겼다. 물리를 이해할 수 없어서 좌절을 했다는 사실이 마치 자연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할 자격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다면 자연과학의 기본인 물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명제처럼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 물리학과에 입학을 했다. 토크쇼에서 봤던 학력고사 성적 우수자가 물리를 잘 해서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면, 나는 정말 물리를 못해서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물리학과에 입학해서 1학년 교양과목으로 일반물리학 강의를 들었다. 우리 학번 담당교수님이 계셨는데, 물리를 공부하느라 결혼을 늦게 하셨다는 소문이 도는 교수님이셨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셨던 것으로 보아 50대 중반이셨던 것 같다. 교수님은 안경을 쓰셨는데 고도 근시이셔서 안경 너머로 교수님의 눈이 너무 작게 보였다.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물리학자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난 듯한 모습의 교수님이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수님은 박사학위가 없으셨다. 역시 소문에 의하면 독일에서 유학을 하셨는데 지도교수님이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그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만 박사학위를 받기 직전에 하이델베르그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위를 받지 못하셨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 교수님은 일본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셔서 말씀하실 때, 어투가 마치 일본말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라는 말 대신

“그러이니까니”

라고 말씀하셨다. 칠판에 필기를 할 때에는 물리 단어를 한자로 적으셨다. 그리고 설명을 하실 때에는 영어를 이용하여 말씀하셨다. 한자를 몰라서 필기를 하기가 어려웠고, 영어를 못해서 아무리 집중을 해도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업 때가 되면,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첫 번째 퀴즈 시험을 보게 되었다. 퀴즈 시험을 보기 전에 일반물리학 교재를 가지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데, 중력에 의한 퍼텐셜 에너지 부분을 공부하며 내가 왜 이리 어려운 걸 공부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간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너무 어려웠다.


버클리 시리즈

그 시절, 물리학과 학생이면 필히 봐야 할 교재 목록이 학생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버클리 대학교의 물리학 교재 시리즈였다. 역학, 전자기학 등등의 분야를 각 권별로 만든 책들이었는데, 난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니 그 책은 필히 정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학이면 한권씩 잡고 도서관에 밖혀 공부를 했다. 역학 책은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책은 전자기학 책이었다. 원서였기 때문에 영어도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잡설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까지 세세히 읽으며 이해를 해야 했다. 자기장과 관련된 내용을 읽던 중 1820년 외르스테드가 도선에 전류가 흐를 때, 주의에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부분을 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간단한 내용이 그때에는 구구절절 어려운 영어 설명 덕분에 내용 이해가 안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다가 그만 나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일반물리학 실험 보고서

일반물리학 실험도 필수교양 교과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실험을 해야 했다. 그때에는 요즘처럼 실험 도구가 충분하지 않아서 한가지 실험의 도구가 한 세트 밖에 없었다. 조교는 학생들을 모야 놓고 실험 방법과 실험 기구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중 렌즈를 이용한 실험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렌즈의 곡률반경’이라는 말을 했다. 그때 사실 ‘곡률반경’이라는 단어를 조교가 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옆에 앉아있던 동기 남학생이 나에게 렌즈를 보여 주며

“렌즈의 곡면을 연장했을 때 생기는 구의 반지름을 곡률반경이라고 해”

라고 설명을 해서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것을 친구는 알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다. 앞 조의 친구가 렌즈의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이리저리 돌려 보는 모습을 보던 그 친구는 이어서

“렌즈를 잡을 때에는 렌즈 중심에 지문이 남지 않게 가장자리를 잡아야 해”

라고 말했다.


실험실에는 8가지의 실험 기구가 준비되어 있었고 8개조로 구성된 수강생들은 일주일에 한 가지씩 실험을 하며, 한 가지 실험을 하면, 앞조가 했던 실험을 이어서 했다. 그때 앞 조의 조원들이 부주의하게 실험을 하는 바람에 이어서 실험을 할 때, 실험 기구가 고장이나 있거나 렌즈가 깨져서 제대로 실험을 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물리학에 대해서 거의 알지도 못하고 물리학을 공부한 데다가 고등학교 때 학교에 실험실이 없어서 실험의 한번도 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실험을 하고 실험 보고서를 쓰려니 어떻게 보고서를 써야 할지 알지 못했다. 실험을 한 후, 실험 이론과 실험 결과, 결론을 적어야 했는데 보고서 양식도 모르겠고 해서 적을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이든 다 적었다. 그렇게 보고서를 작성한 날, 과 동기 중 야전잠바를 입고 다니던 동기가 나를 보며, 이마에 잔뜩 힘을 주어 이마를 찡그려 주름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툭툭 내뱉듯이 말했다.

“야! 보고서 보여줘.”

순간 덩치가 크고 험악해 보이는 인상의 남학생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보고서가 말도 안되는 보고서라 보여 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남학생의 위협에 겁을 먹고 아무 말도 못하고 보여줬다.

조교는 보고서를 걷어가서 채점을 한 후, 돌려 주었는데, 내 보고서 점수를 보지 못한 채로 있다가 그 남학생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오금이 저려 가던 길을 멈추었다.

“야! 너 때문에 D 받았잖아!”

그 말을 듣고 나의 보고서 채점 결과를 보니 나도 점수가 D였다. 그러길래 누가 나의 보고서를 베끼라고 했냐 말이다.


졸업

어느덧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어떤 친구는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어떤 친구는 유학을 갔다. 졸업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 동안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 공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원없이 공부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느 때보다 빛났다. 비록 지금은 대학 때 공부한 것을 거의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 시간들을 치열하게 살아냈음에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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