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거리에서

by 봄날

어깨에 맨 가방끈이 짖누르는 무게에 힘겨워하며 광화문 거리를 걷고 있었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고 나오는 길은 언제나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서점에서 오래도록 서서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는데 늘 어떤 의무감이 나로 하여금 서점을 향하도록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대학원 과정을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울감이 몸에 가득했다. 그날도 지칠 때까지 서점에 있었다. 발을 끌어다시피 겨우 걸어 버스 정류장에 다다를 때였다.

누군가 나를 뒤에서 불렀다.

저 잠시만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힘겹게 돌아보았다. 30대 정도의 키가 작은 남자가 작은 골목 입구 앞에 서 있었다. 그 근처 직장에 다니는 사람인듯했다. 일 때문에 생긴 듯한 주름이 잡힌 양복을 입고 있었다

네가티브 포지티브. 할 수 있어요.

그 남자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할 수 있어요. 기운이 있는 사람이네요.

나는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크게 다시 말했다.

포지티브. 네가티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 보았다.

할 수 있어요. 손을 잡아볼게요. 힘이 있거든요.

그 남자는 내가 엉거주춤 하고 있는 사이에 나의 손을 잡았다.

맞아요. 내 말이 맞아요.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이 목구멍에 걸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가 나의 손을 잡았을 때 손의 포근함이 느껴졌다.

나는 힘없이 그 손을 놓고 그냥 뒤돌아 갔다. 그러다 문득 그 사람이 한 말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가던 길을 되돌아 가서 그 남자가 서 있던 골목 입구에 다달았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그 기간 중 나는 박사과정에 재입학했다가 한번 더 포기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논문 주제를 정하고 박사과정을 이어가게 되었다.

나의 논문 주제는 물리문제 해결 과정 중에 주어지는 피드백의 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그 페드백에 의해 학생들이 문제 풀이 과정 중에 느끼는 정서를 포지티브 정서와 네가티브 정서로 구분하여 연구를 하였고 그 결과가 졸업 논문이 되었다.

20년 전 광화문 거리 한켠의 골목 입구에서 만난 그 남자는 나의 논문 주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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