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망원동 토박이였다. 망원동을 떠나 산지 10년이 된 지금, 망원동은 연고자가 없는 고향이 되었다. 우리집은 내가 태어난 중화동에서 아현동으로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곱살 때였던 것 같다. 이사를 한 집 대문 앞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반쯤 누은 채로 생각했다.
'올해는 7◇년..'
글자보다 숫자를 빨리 익혔던 나는 그 해 연도를 알고 있었다.
아현동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1학기까지 다닌 후, 다시 이사를 간 곳이 망원동이다. 그리고는 마흔 여섯살이 될 때까지 망원동 혹은 망원동 앞 성산동에서 살았다.
망원동에는 큰 시장이 있었다. 어머니와 같이 시장에 가면 야채장수, 과일장수들의 '사과 얼마에 몇 개', '배추 한포기에 얼마!'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장 장수들이 살기 위해 목청껏 외치는 소리는 내가 스물일곱살이 되어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할 때 나를 버티게 한 힘이 되었다.
지금은 망원동이 핫플레이스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곳이 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의 망원동은 곳곳에 검은 개천이 흐르는 변두리 동네였다. 여름밤이면 난지도에서 내려오는 쓰레기 냄새로 코를 막고 잠을 자야 했고 장마철이면 한강물이 넘칠까 노심초사 걱정을 했다. 실제로 동네가 물에 잠겨 이재민이 되어 초등학교로 피신을 가기도 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은 물이 넘치던 그날 일을 말하며 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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