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렙 Jan 26. 2024

수건은 알아서 채워지지 않는다.

직접 해보니 깨닫게 되는 것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홀로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느낀 건 ‘엄마아빠의 부지런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밤을 새우지 않는 한 엄마보다 일찍 일어날 수는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가끔 게임을 하다 밤이라도 새우면 새벽 5시 20분쯤에 안방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나는 얼른 잠든 척을 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밤새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와 바통 터치를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엄마아빠는 어떻게 본인들 생업에서 열심히 일도 하면서, 자잘한 집안일까지 다 했을까. 이제와 생각하면 대단하고 신기할 정도다.  




‘내 이름으로 날아오는 공과금 고지서를 받아보면 철이 든다.’는 말이 있다. 독립을 하면 비로소 그간 부모님께서 해주신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몸소 깨닫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입을 옷이 없어지지 않을 기간에 맞춰서 매번 온 가족의 빨래를 한 아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내 방 서랍장에 잘 개켜진 속옷과 기본 티셔츠들, 화장실 수납장에 항상 가득 차 있는 수건들은 저절로 채워지는 게 아니었다.

이걸 혼자 살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독립 후 생애 처음으로 텅 빈 화장실 수납장을 열게 된 순간, ‘아, 수건들이 알아서 채워지는 게 아니었구나’ 깨달으며 코 끝이 살짝 찡해졌다.






가끔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학창 시절에 받았던 용돈, 먼지가 없는 바닥, 머리카락이 남아있지 않은 개수대, 잘 시간만 되면 미리 켜져 있는 전기장판, 눈 뜨면 끓여져 있는 김치찌개 등 이 모든 게 나를 위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들이 아니었음을. 다 나를 위해 챙겨주는 그 손길이 있었음을.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나만 신경 쓰고 책임지면 되기에, 내가 하지 않음으로써 나오는 불편은 온전히 내가 감당하면 된다.

그런데 아빠엄마는 그 불편이 나에게, 자식들에게 갈까 봐 피곤에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뜨고, 눕고 싶은 몸을 일으켜해야 할 일을 한 게 아닐까.




찡해진 코를 부여잡은 손을 내려 전화기를 잡고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요. 뭐 하세요? 그냥 했어요


아니 돈 필요한 게 아니라니까…


아 아빠가 돈이 필요하다고?


예 여기 지하철 소리가 커서 잘 안 들려요. 끊을게요”



부자의 통화는 오늘도 평화롭다.



이전 10화 짝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