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렙 Jan 27. 2024

돈 걱정이 밀려와서

세탁기와의 대화. 넋두리



오랜만에 다시 세탁기 앞에 앉았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어? 거의 매일 보는데 각자 할 일만 하고 말을 거는 건 오랜만이라 좀 어색하기도 하네.




한동안 세탁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만큼 별 일이 없었다는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잠깐 앉아서 마음을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무슨 일 있냐고?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고. 그냥 걱정이 좀 밀려와서.




무슨 걱정이냐고?

별 건 아니고. 그냥 돈 걱정이 밀려와서. 돈 나갈 일이 생기거나 한 건 아닌데 정말 그냥 걱정이 밀려올 때가 있잖아? 그래서 좀 심난해진 거 같아.




돈 관련된 걱정은 평생 걸쳐서 해온 거 같아.



초등학생 때는 컵떡볶이 500원짜리 큰 컵을 먹고 싶었는데 그 돈 아깝다고 300원짜리 작은 컵을 먹으면서 친구를 부러워하고.



고등학생 때는 축구화를 따로 사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더라. 나는 항상 그 하얀색 실내화로 했었거든. “나는 실내화로도 잘하니까.”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내심 축구화가 신고 싶었지.



대학생 때는 뭐 말할 것도 없지. 사실 이 때는 모두가 돈이 없는 시절이라 크게 나만 비참하다거나 이런 느낌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 오히려 ’ 나만‘ 이렇지 않다는 점에 큰 위로를 얻었지.



취업하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고 나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까?’에 집중했던 것 같아. 아니. 집착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왜 그렇게 모으는 거에 집착했냐고?

아, 결혼을 하고 싶었거든. 결혼할 사람이 있다거나 했던 건 아니고. 그냥 결혼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으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괜히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 남자가 얼마는 모아야 결혼할 수 있다 ‘ 이런 게시물들 있잖아. 그런 걸 보고 괜히 혼자 실망하고 좌절하고 조급해하지 않았나 싶어.








계속 돈 걱정을 하면서 지내서 그런지, 오늘처럼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걱정이 밀려올 때가 있어. 말 그대로 걱정을 사서 하는 거지.



나도 이러고 싶진 않은데. 이럴 때는 걱정을 그냥 흘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 걱정이 내 안에 머물러서 나를 병들게 하지 않게.



내 안에 머물러 쌓이는 걱정들로 인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이전 11화 수건은 알아서 채워지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