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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Nov 15. 2021

철암그리기 20주년 기념 전시라니..

2082년 남돔다리, 신설동 위에서

'철암그리기' 20주년 기념 전시라니..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이 체감적으로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때 거기, 스러져가는 폐광촌 철암에서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의 온기를 느꼈다. 목탄 자루와 종이뭉치를 큰길이나 골목길 가릴 것 없이 아무데서나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다. 그때 그린 사생그림 두 장을 골라 전시에 참여한다.  


10월 20일 남동다리, charcoal on paper, 50x71cm, 2002


2002.10.20 남동다방의 창밖으로 가을비에 흠뻑 젖은 남동다리가 번들거린다. 지난 9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가 망연자실하여 철삼교 위를 서성거리며 중얼거렸다.


“글쎄, 다 떠내려 가버렸어. 어데서 왔소? 내가 신문사에서 한 20년 근무했는데.. 시장에게 말을 좀 해야겠군. 그런데 다 떠내려 가버렸어. 그래, 술을 마셨지. 술 마실 일밖에 없어. 아, 지금 그리고 있는 그 집에 내가 임시로 묵고 있다오. 그림에 열중하는데 내가 방해가 되겠군. 근데 다 떠내려 가버렸어.”


8월이 끝나갈 무렵 불어 닥친 태풍 루사가 몽땅 휩쓸고 지나간 직후 철삼교에서 바라본 철암천변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륮



3월 27일 신설동 위에서, charcoal on paper, 50x71cm, 2002


2002.3.17 그린식당의 승합차를 타고 도립공원을 내려와 오른쪽을 꺾어 돌자 낯익은 함태광업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 대의 포클레인이 때려 부수고 있었다. 길이 꺾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차창으로 멍하니 지켜보았다. 다시 차를 돌려 함태광업소 앞에 일행은 모두 내렸다. 내리자마자 일제히 지상명령이라도 받들듯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거대한 공룡의 주변을 위협적으로 비행하며 윙윙거리는 벌 떼처럼 마구 눌러댔다. 포클레인 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작업을 잠시 멈췄다. 광부들의 피와 땀이, 혼이 서려있는 과거의 흔적을 그들은 왜 한사코 지워버리려고만 할까. TV 광고 문구의 달콤한 속삭임이 귓전에 맴돌았다.

'당신의 피곤한 주름을 말끔히 제거해드리지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과거는 없습니다.’ '보다 세련된 화장술을 배우세요.’ 륮


사진 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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