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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Apr 30. 2021

그런 날

그런 날, oil on linen, 45.5x53cm, 2020-21

그런 날, colored charcoal and oil on linen, 45.5x53cm, 2020-21

작년 가을 강릉 아야진 해변에 있었다. 파도를 그렸다. 캔버스의 아랫부분을 남겨두고 윗부분에 그렸다.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는 청명한 날씨와 더불어 참 맑았다. 그때 검은 개가 나타나 찰방찰방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해가 바뀐 어느 날 비워 둔 그림의 아래쪽이 보였다. 코로나로 한산했던 그 가을 해변이 까마득한 젊은 날을 강시 걸음으로 불러냈다. 루 리드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백사장에서 통기타를 끌어안고 노랫말을 읊조 철썩대는 파도가 족족 집어삼켰다.
그때 백사장을 쏜살같이 뛰어가는 흰 개가 흘끗 눈에 들어왔다. 내리찍는 햇살을 피할 길 없어 빛의 비늘을 번뜩이는 바다와 하얗게 달아오른 백사장의 경계를 따라 흰 개가 질주했다.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획이라도 긋듯이 달려 나갔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그런 날이 있다.


한적한 해변에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지나가는 배 한 척 안 보이는 가깝고 먼바다에 이따금 흰 포말을 일으키 작고 큰 파도가 일고 있다. 어느 순간이었다. 바깥으로 향한 시선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텅 빈 몸의 안쪽으로 달렸고 이내 내장의 벽과 마주했다. 완벽한 고립이었다.

그런 날, acrylic and oil on linen, 45.5x53cm, 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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