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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Jan 16. 2022

팽이찍기 | 어릴 적 이야기 8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팽이찍기_oil on linen_45.5x53cm_2022



큰길 따라 허름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하꼬방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 아이들은 거칠었다. 학교를 꿇은 중학생 나이의 애들도 많았다. 어느 날 패를 지어 아랫길에 있는 우리 골목에 원정을 왔다. 평화롭게 팽이박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끼어들면서 팽이찍기로 놀이가 바뀌었다. 엉겁결에 등 떠밀려 아랫길 대표가 되었다. 골목길이 열기로 달아올랐다.


휘리릭 머리 위에서 아래로 투구하듯이 팽이를 내리찍었다. 휘리릭 퍽, 휘리릭 퍽, 꽁꽁 얼은 땅바닥이 여기저기 파였다.내 팽이가 집중 공격을 받았다.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알았다. 한일자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육중한 팽이가 호리호리한 내 팽이 위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빡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났다. 졸지에 윗동네 외계인의 침공을 받아 박살났다. 진즉에 사라진 친선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수시로 소금물에 절여 박치기에 최적화된 내 팽이가 이 골목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지난 나날이 주마등처럼 동공을 스쳐 지나갔다.


윗동네 패들은 팽이를 챙겨 유유히 떠났고 우리 동네 애들도 슬그머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빈 골목에 홀로 서서 한동안 하늘과 땅을 번갈아보다가 두 쪽난 팽이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옥상을 오르내리는 철계단 아래 화단에 묻었다. 이후 삼일 동안 앓았다.  2022.1.16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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