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 따라 허름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하꼬방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 아이들은 거칠었다. 학교를 꿇은 중학생 나이의 애들도 많았다. 어느 날 패를 지어 아랫길에 있는 우리 골목에 원정을 왔다. 평화롭게 팽이박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끼어들면서 팽이찍기로 놀이가 바뀌었다. 엉겁결에 등 떠밀려 아랫길 대표가 되었다. 골목길이 열기로 달아올랐다.
휘리릭 머리 위에서 아래로 투구하듯이 팽이를 내리찍었다. 휘리릭 퍽, 휘리릭 퍽, 꽁꽁 얼은 땅바닥이 여기저기 파였다.내 팽이가 집중 공격을 받았다.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한일자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육중한 팽이가 호리호리한 내 팽이 위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빡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났다. 졸지에 윗동네 외계인의 침공을 받아 박살났다. 진즉에 사라진 친선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수시로 소금물에 절여 박치기에 최적화된 내 팽이가 이 골목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지난 나날이 주마등처럼 동공을 스쳐 지나갔다.
윗동네 패들은 팽이를 챙겨 유유히 떠났고 우리 동네 애들도 슬그머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빈 골목에 홀로 서서 한동안 하늘과 땅을 번갈아보다가 두 쪽난 팽이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옥상을 오르내리는 철계단 아래 화단에 묻었다. 이후 삼일 동안 앓았다. 2022.1.16 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