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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Jan 15. 2022

물주놀이 | 어릴 적 이야기 7

손으로 접어 만든 딱지를 가지고 놀 때만 해도 순진했다.

물주놀이_oil on linen_60.6x72.7cm_2022


신문지나 포장지, 다 쓴 공책이나 지난 교과서의 표지를 접어 만든 딱지를 가지고 놀 때만 해도 순진했다. 힘과 약간의 기술로 상대의 딱지를 쳐서 뒤집으면 따먹을 수 있었다. 끔 판정에 시비가 붙지만 속임수가 불가능한 노동집약적인 게임이었다.


인쇄물 딱지가 출현하면서 놀이는 도박에 가까워졌다. 물주놀이가 그렇다. 물주 한 사람이 판을 깔면 나머지 아이들이 배팅했다. 딱지를 까서 인쇄된 그림의 계급이 높으면 이긴다. 물주는 자신의 것보다 낮은 계급에 배팅한 딱지를 거두어 높은 계급에 배팅한 딱지의 수만큼 내주었다. 각자 몇 군데로 쪼개서 배팅하여 리스크를 줄이기도 하지만 물주만큼 유리하지 않았다. 물주는 내어줄 딱지를 충분히 보유해야 하고 아이들로부터 떼어먹지 않을 거란 신임을 받아야 하는 대신 낮은 확률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었다. 웬만하면 어느 정도의 수익률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었다.


간혹 꽤 물량을 확보한 놈이 나타나 물주를 자처할 때가 있다. 그러면 도리를 쳤다. 도리는 네가 가진 딱지만큼 건다는 말이다. 황야의 결투라도 하듯이 단 둘이 맞붙는 50%의 확률 게임에서 지면 상대가 가진 딱지의 수만큼 내놓아야 다. 만약 계속 도리를 쳐서 잃게 되어 줄 딱지의 수가 2, 4, 8, 16기하급수 늘어난다.

연속해서 둘 중 한 곳에 도리를 4번 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하고 있을 때 대개는 물주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자본의 위력을 일찌감치 몸으로 깨우쳤다. 생각해보면 청빈한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게 분명하다. 하여간 그리하여 도리를 칠 때마다 극도의 긴장감이 더해졌고 판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로 인해 이글루가 만들어졌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아무개야 밥 먹어라~, 이집저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악다구니로 바뀔 때쯤 최후의 물주가 가려고 그날의 장은 닫혔다.


구슬치기도 딱지치기처럼 언제나 막판에 물주놀이로 빨려 들어갔다. 팽이치기는 조금 달랐다. 수를 늘는 대신 찍기로 상대의 팽이를 쪼개버림으로써 끝장을 냈다. 물주놀이의 비정한 도박심리와 다르게 격투기와 같은 단순무지의 잔혹함이 있었다.

해서 모름지기 남을 동정하는 측은지심,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 겸양의 미덕을 갖추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을 길러야 한다 맹자 말했나 보다. 2022.1.15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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