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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Feb 11. 2022

가족 | 어릴 적 이야기 11

으레 물난리가 났다.

가족_oil on linen_72.7x90.9cm_2022



으레 물난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커단 물탱크를 실은 트럭이 국민학교 정문 앞에 나타났다. 공영주택 사람들은 물론 큰길의 하꼬방, 돌산 사람들까지 몰려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지게, 물항아리, 양동이 심지어 세숫대야까지 동원하여 삽시간에 북새통을 이루었다.


건장한 아저씨 둘이 물을 뿜는 호를 관장했다. 고무호스의 직경이 10센티는 족히 되었다. 웬만한 크기의 물통은 순식간에 물이 찼다. 수도꼭지를 잠갔다 열었다 할 겨를 없이 연이어 호를 갖다 대야 했기에 물통을 바짝 붙여 미리 줄 세워 놓아야 했다. 이 일을 얼추 큰 까까머리 중학생 애들이 도맡아서 했다.


그중에 녀석이 끼어있었다. 짝꿍이었다. 늘 누런 콧물을 코에 달고 있었고 두껍게 쌍꺼풀진 큰 눈을 끔뻑거리며 하릴없이 웃었다. 담임이 짝을 지워주며 공부를 도와주라고 했다. 짝은 받아쓰기나 산수가 저학년 수준이었다. 이것도 모르냐며 타박할 때마다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헤헤거렸다. 학교를 파하면 자처해서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그런 짝의 큰 눈과 그때 딱 마주쳤다. 물탱크 앞에서 부산을 떨며 사람들의 물통을 정리하고 있던 짝이 뚝, 멈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가와 내 물통을 집어 맨 앞줄에 갖다 놓았다. 더듬거리는 몇 마디 말과 시도 때도 없이 헤헤거리는 게 표현의 전부였던 짝의 행동거지가 놀랍고 생소했다. 짝은 성큼성큼 뒷줄에 선 키다리 담임선생님에게도 다가갔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만류하는 담임의 긴 팔을 뿌리치고 큰 물통 두 개를 뺐다시피 하여 앞줄로 옮겨 놓았다. 의기양양한 짝의 뒷모습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학교 밖에서 짝은 억척스러웠다.


그날 이후 짝에게 잘해주었다. 때로 난 공손하기조차 했다. 그때마다 짝은 어리둥절해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뭔가 공평해질 것 같았다... ... 만일 누군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를 뒤로 미루어 두고 있다면 그는 청빈한 삶을 살고 있거나 무능력한 사회부적응자일 거다. 2022.1.26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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