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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달 Dec 28. 2023

널 스토리

나는 독한 년이다. 아니 독한 년이었다.

병원에서 소위 말하는 가장 힘든 곳에서 신규를 시작한 난 사실은 천하제일 울보였어. 어릴 때 한번 울기 시작하면 호랑이와 곶감에 나오는 아이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친척들은 내가 울보였다고 모이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해.  집에서는 그렇게 울보였던 내가 울지 않는 곳이 바로 병원이야.  내가 운다면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은 어떨까?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앞에 있는 간호사가 운다면? 환자는 더 많은 걱정을 할 테니까. 그러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위로와 공감, 격려뿐이야.  어떻게든 이 힘든 치료를 잘 버틸 수 있도록 말이지.  종양내과 연구간호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언제까지 할지 모르는 항암에 대한 이해를 환자에게 시키는 거야. 교수님께서는 이 암은 혈압 당뇨처럼 성나지 않게 지켜보면서 달래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거든. 하지만 환자는 진료를 보고 나와 나에게 꼭 물어봐. 언제까지 이 치료를 받아야 하냐고 말이야. 교수님께 상황을 들었지만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거야.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어. 그저 이 못된 암이 환자분몸에서 친구처럼 잘 지내는 것만 기도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 환자분이 계셨는데 20대 후반에 축구하다 넘어져서 병원에 오셨고, 그때 희귀 암 진단을 받았어. 여러 항암을 잘 버텨 오셨던 분인데, 그래도 내가 진행하는 임상시험약은 기존 항암보다는 훨씬 수월하다고 하다고 오실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간호사님” 밝게 인사하는 환자분에게 늘 감사했어. “ 환자분 힘들지 않으세요?” 물으면 환자는 웃으면서 ”간호사님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넉살 좋은 대답도 잘해주셨어. 한 번도 힘들다고, 짜증내시 거나 화내시지 않았어. 가끔 내가 피곤해 보이거나 하면 오히려 환자분이 걱정해 주실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있으셨지. “그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 말이 먹먹하더라. 그 심정 솔직히 나도 너무 이해하거든. 나중에 내가 용기가 생긴다면 그 이야기를 하겠지만 나 역시 아침에 눈뜨는 걸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라 나만 아는 유대감이 있었어.

다행히 이 환자분은 이 임상약에 별다른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아서 연구기간이 끝났지만, 인도적인 차원으로 약을 더주기로 교수님께서 결정하셨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시험약을 모두 다 쓸 때까지 진행하기로 했어. 항암 환자는 항암제를 투약하면서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약마다 다르지만 2,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 종양이 커지거나 다른 부위에 암이 생기면 더 이상 약이 듣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그 항암을 중지하고 다른 항암을 시작해. 아니면 항암제 부작용이 너무 커도 중지할 수 있어. 2년 넘게 이 환자분은 약에 대한 부작용도 없었고 종양도 작아졌어. 너무 안심했던 탓일까? 이번 결과에 새로운 암이 보였어. 환자를 만나기 전에 이미 난 검사 결과를 보아서 알고 있었어. 그날도 웃으면서 인사하는 환자에게 난 웃으면서 인사할 수 없었어. 내 표정변화에 환자는 이미 눈치챈 것 같았어. 더 이상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수님 진료를 보러 들어갔지. 항암제가 더 이상 듣지 않으니 다른 항암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진료실에 나왔어. 마지막 연구 관련 검사와 일정을 설명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환자 앞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않았는데 말이야. 환자분께 전화로 설명하겠다고 하고 자리를 피했어. 환자 마음은 더 아팠을 텐데 거기서 내가 울어 버리니 미안하고 당황스럽더라. 이제 내가 병원을 떠날 때가 된 건가? 고민하게 되는 날이었어. 마음을 가다듬고 치료 잘 받으시라고 전화했어. 환자분은 나에게 “그동안 간호사님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했어. 그래서 난 더  강해지기로 결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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