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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리한 호구 May 21. 2023

'나'로 살아가기

 요즘 연기학원을 다니며 연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별 생각 없이 다니기 시작한 학원인데 엄청 재미있게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 제가 연기학원에서 받은 숙제가 있었습니다. 6줄짜리 대본을 받고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말하고 있는 건지, 평소 성격은 어떤지, 어떤 과거사를 가지고 있고 외모는 어떻고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종교는 무엇이고 지금 뭘 위해서 이야기 하는 것인지를 자세하게 써 오라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당연하죠.. 지금까지 제가 봤던 시험들은 지문을 읽고 그 안에서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을 맞추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6줄 대사로 그 사람의 키가 몇인지, 지금 어디서 말하는 건지, 종교가 뭐고 형제관계는 어떤지를 알수가 있나요? 전혀요..  


 그래도 숙제니까 생각해 봤습니다. 대사를 읽다보니 하나의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 앞에서 말하고 있는 인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장면에 잘 어울리는 그 사람을 자세히 뜯어보며 그 사람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사업에 실패했던 벤쳐기업 사장이 AI 기술로 대박을 친 후 TV에 나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설정했죠. 방송이니 말쑥하게 양복을 입었고, 여러가지 실패를 겪으며 단단해 진 만큼 왠만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 여유로운 말투와 표정으로 앞에 있는 청년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해주는 한 인물을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하면서 이걸 왜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6줄 대사만 잘 읽으면 될텐데 굳이 이걸 할라고 한 사람을 아예 만들어 내야 한다고? 하는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쓰잘데기 없는 일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내가 생각한 그 인물을 머릿속에서 계속 쳐다보고 그 사람의 성격과 그 성격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면서 있지도 않은 그 사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부자가 되어서도 소탈하게 사람들과 국밥을 먹는 것을 즐기고 지금 입고 있는 양복이 조금은 어색한 인물 같이 대본에 나와 있지 않는 그 사람의 행동이 그려졌죠. 기쁠 땐 어떻게 기뻐하고 슬플땐 어떻게 슬퍼하는지 말입니다.  


 결국 이건 한 작품을 이루는 다양한 장면이 출현하는 '한 사람'이 통일성을 가지게 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면 기쁨을 표현하는 한계점이 있을 것이고 슬플때도 그것을 표현하는 범위가 있을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를 못지르거든요. 그것처럼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범위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고 규정지어주는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로 '나'라는 인물로 살아가고 있나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느라, 상대방을 너무 배려해주느라 상대방이 원하는 인간을 '연기'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 사람은 한식을 좋아하니 같이 밥먹으러 가면 나도 한식을 제일 좋아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저 사람은 양식을 좋아하니 그 사람이랑 있을 때는 양식을 제일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나요? 정작 나는 일식을 좋아하고 있는데 말이죠. 

 

 연기를 하면서도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 놓고 있으면 편합니다. 그 인물이 어떻게 주변에 반응하는지 어느정도 정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대에 따라 계속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면, 그걸 다 신경써야 한다면 얼마나 머리아플까요? 심지어 그것이 연기가 아니라 '내 삶'에서라면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고,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여기 지금 실존하고 있는 '나'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걸 앞에 사람이 맞추어 주려고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척 '연기'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나조차도 나의 '캐릭터',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나중에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 성격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차 모르게 되겠죠. 그러면 얼마나 매사에 불안정할까요.. 어떤 상황에 내가 해야할 반응을 매번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자신을 '연기'하다보면 사람들은 귀신같이 압니다. 아무리 내가 나는 '양식'을 좋아한다고 세뇌를 해도 표정과 말투에서 나오는 어색함은 어쩔수가 없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지금 불편해 하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그것이 무엇때문에 불편한 건지는 상대가 알 수 없으니 '이 사람은 나랑 있는게 불편한가보다..'라고 오해를 하게되고 그렇게 관계를 맺기 어려워 질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기껏 힘들게 '연기'한 보람도 없어지겠죠.  


 그러니까요 우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는 한번 생각해 보죠.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내 성격은 어떻고 왜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겁니다. 배우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하지만 나에 대한 것은 그냥 내 안에서 찾아보면 되는 것이니 더 쉽겠죠. 자신이 자신을 속이지만 않는다면요. 그렇게 나를 찾고 '나'라는 인물로 나의 정체성대로 살아갈 때, 그리고 그걸 표현할 때 좀 더 안정감이 있고 여유롭게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상대도 나는 일식을 좋아하는데 너를 위해서 양식을 먹으러 가주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죠~!! 내가 배려하고 있다는 걸 가끔은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아무도 안 알아주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렇게 나에 대해 잘 알고 '나다운 모습'으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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