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보
사진 한 장에 그리움이 파도처럼 다가와
나를 삼켜버렸다.
친구가 내게 보여준 사진 속에 엄마가
있었다.
그리운 엄마, 나와 친구, 엄마 둘이서
찍은 넷이서 나란히 학교 화단
앞에서 한복을 입고서
햇볕이 눈에 정면으로 들어왔던지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엄마는
사진 속에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여고 때 생활관 실습이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남자들은
안 하는 생활 속의 예의에 관한
실습을 했다.
지금은 다 생각도 나지 않지만
한복을 입고서 큰절, 작은 절 하는 법,
차를 우려서 내고 마시는 법,
등 여러 가지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여자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 다고가 수업의 핵심이었다.
요즘 그랬다간 광화문이
시끄러워졌겠지만 라테는 그랬다.
내 인생에 그때가 도움이 되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단지 친구들과 1박 2일로 생활관에서
같이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좋아했던 것 같다.
생활관 실습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부모님이 오시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그동안 배웠던 큰절을 하고
다과를 준비해 대접하는 것이었다.
기억으로는 그렇게 하면 엄마들이
이제 다 컸네 시집가도 되겠어
이러시며 좋아했던 것 같다.
두어 달에 한 번씩은 만나는 친구인데
독감에 걸리고 집안에 일이
생기고 하면서 그렇게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버렸다. 안부만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이번에는 시간이 되면서
늘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났는데
밤근무를 하고 나오는 친구를 배려해
1시에 점심약속을 하고서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자주 운전을 안 하다가 보니 시간
개념이없어서 인지 12시 반에
도착을 했다.
아직 시간이 한 참이 남았는데
폰을 만지작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문자가 온다.
"어디야 "
"벌써 일어났어?
난 아파트 주차장 도착"
"나 벌써 일어났지 옷만 입고 나갈게"
친구는 항상 옳다
언제 어떤 식으로 만나든
"뭐 먹을 거야"
한정식 잘하는 데 있는데
"야 하루 삼시세끼 한정식인데
또 한정식이야 나 싫어"
"그렇구나 어머니랑 같이 있으면
그렇네 내가 생각을 잘못했네
그면 파스타 먹으러 갈까
좋지 나는 피자, 치킨, 파스타,
이런 거 먹고 싶었어.
집에서 못 먹는 거.
그래서
예전에 갔었던 파스타집으로 가서
새우 크림 파스타에
스테이크하나를 시키고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조잘조잘
오랜만이라고 비싼 스테이크를
시켜었다.
스테이크는 입에 착 감기는 맛도
식감도 별로였고 파스타는 역시나
입안에 감도는 풍미가 장난이 아니었고
먹고 난 후에도 느끼한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완벽한
점심이었다.
"베이커리 카페로 가자
이제 밥 배 따로 빵 배 따로 있잖아
내가 살 거야"
그래서 찾아간 생전 처음 보는 카페
음료를 시키면 빵을 하나 준다고 했다.
작은 빵이거니 했는데 시판되는 큼직한
빵이 심지어 맛까지 훌륭했다.
커피에 빵까지 가져다 놓고 떠는 수다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미가 있었다.
"내가 오빠 집에 가서 사진을 하나
찾아냈는데 너 보고 울면 안 돼"
그러면서
사진을 한 장 꺼내어 보여주었다.
엄마 둘, 우리 둘, 넷의 사진
보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울지 마 니가 우니까 나도 눈물 나잖아 "
친구의 말소리도 카페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 길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펑펑 났다.
엄마는 언제 어떤 식으로 만나던
나에게 울음꼭지를 틀어버린다.
엄마 나이 마흔셋에 태어난 나는
엄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
결혼하고서 2년 뒤에
엄마가 돌아가셨으니까 늘 그립고
가슴 한편이 아리게 다가온다.
요즘 어머니와 합가 후 일상들이
힘들어 가슴에 바윗돌 하나 올린 것
같았는데 엄마의 사진이 나를 위로
해주고 있었다.
"막내야 다 그렇게 산단다, 또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
한 참을 울고났더니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는 내 눈물이
애달파 울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고
우리는 그렇게 카페에서 다른 사람
시선도 상관없이 울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