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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잠궈고 나갔니?

어머니와 합가 이야기

by 마당넓은


휴가를 가기로 한 날짜에

폭우 예보로 날씨가 좋아지면,

휴가 날짜를. 조정하기로 했다.

8월 15일이 지나고 여름의

끝자락은 아우성이라도 부리듯

연일 불볕더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지금이 딱 휴가 가기 좋은 날이네.

캠핑 준비해서 나가자."

매일 똑같은 일상에 살짝

지쳐갈 무렵 그 한마디는 단비

같았다.


연로하셔서 집밖으로 나가는 걸

꺼려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호박죽, 녹두죽을 끓여놓고서

캠핑에 필요한 짐을 챙겨 나온다.

뒤통수의 싸늘함은 집에 던져두고서.

매번 며칠 집을 비우면 어머니의

눈초리는 매섭게 변한다.


평소에 노인정이나 병원은 다니시고

간단하게 음식을 해 드시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우리가 나가면 평소에 못했던 걸

주방에서 하는 재미가

쏠쏠해하시면서도 매번 우리가

나가면 심통을 부리신다.

'저것들이 나 놔두고 어디 가서

맛난 거 먹으려나?

어디 좋은 데를 가나?'

세상 좋아졌다는 말까지 지나가는

말처럼 흘리신다.


이제는 그런 말을 하든 말든 난

신경 써지 않기로 했다.

이것저것 다 생각하다가

스트레스로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올라 지난번에 입원까지

했는데, 이제는 짐을 당당하게

보란 듯 챙겼다.


"냉장고에 있는 거 챙겨드시고

우리가 올 때까지 가스 불조심하고

계세요."


냄비를 몇 번이나 태운적이 있어

경보기도 달았지만 걱정스러워

조심하란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갔다.


3박을 산속 조용한 계곡에서

물놀이와 맛있는 거 먹으며

한밤엔 밤하늘에 우수수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잘 보내고

집으로 왔다.


일상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살얼음

같은 감정은 다 녹이고 처음처럼

지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야들아 너희들 나가면서 가스

회사에 가스 잠그라 하고 나갔더냐?"

"어머니 무슨 말씀이에요?

우리가 왜 가스를 잠가요 집에

사람이 있는데"

"너희들 가고 가스레인지에 불이

안 와서 밥 한 번도 못해먹었다."


가스레인지에 가서 불을 올려보니

찍찍찍 소리만 들리고 불은 올라오지

않았다. 남편이 보더니 건전지가

다 되었나?새로 사 와서 갈아

끼워야겠네.


냉장고에 죽도 다 드시고

반단 두고 간 부추는 켜지지 않은

가스 불에 뭐를 해 드셨는지?


가스 불을 잠그고 나갔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어머니 어쩜 좋을까?


"어머니! 설령 속상한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머니 집에

계시는데, 가스를 잠권다는 상상을

하신다는 게 난 이해가 안 되네요.

궁금하시면 좋은 말 있잖아요.

얘들아 가스가 안 나오더라, 뭐가

잘못됐는지 한 번 봐라 이렇게

말씀하시면 기분도 안 상하고

좋잖아요."


"아 그런 말이 있었네.

오늘 내가 하나 배웠네."

비꼬는 투로 말씀을 하시더니

방으로 휙 들어가셨다.


상대방이 속상해하는 말을 어쩜

그렇게 잘 찾아 하시는지 휴가

잘 보내고 돌아와 냉랭한 집

분위기에 어깨에 바위를 얹은

느낌이다.




합가 이야기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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