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캐리어를 펼치면 여행이
시작된다
함께 가야 할 친구들
소리 없이 주인의 부름을
기다린다
"이번엔 어디야?
납작하게 챙겨놓은 짐 사이
셔츠가 목적지를 묻는다
스카프, 가방, 수첩, 겉옷, 양말
내가 던져낼 말을 주워
담을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딜까?
물건 속 깊숙이 쌓아둔
정리되지 않은 마음
일찌감치 자리 차지를 하고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닿지 못한 세계를
만난다는 그 마음 하나가
모여드는 날
캐리어 안으로 공기와
나의 말은 물건보다
가득 채워지고
캐리어가 들고나갈 이야기
한가득 채우면 열쇠 잠그고
지퍼를 올린다
그 순간 나의 여행은
시작되고 무거워진 마음
하나가 도망을 준비한다
묘하게 떨리는 설렘으로
또르르 굴러가는 바퀴처럼
나의 비워내는 하루가 시작된다
내 마음을 하나씩 달래면
나의 어제는 조용히
머물다 떠나고
돌아오는 날 가벼워진
무게에 미소 피워 오르고
행복이란 나를 만난다
캐리어를 펼치면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