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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Mar 11. 2024

점 밖의 나

어린 시절, 내겐 재능이 많았다. 불안장애라는 결핍에 어릴 적부터 쉴 틈 없이 머리를 굴렸고 아마 그 탓에 남들보다 머리를 쓰는 법이 늘었던 것 같다. 뭘 해도 곧잘 남들보다 잘하게 되는 건 타고난 내 재능이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뭘 해도 남들보다 조금 잘하게 될 뿐, 한계라고 느껴지는 벽은 빨리도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열정을 갖는 재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난 노력을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뭘 해도 금방 질리곤 했다. 공부는 적당히 해도 높은 성적이 나왔고 운동을 즐기지 않아도 체육대회에선 반 대표로 계주에 나가곤 했다. 미술부에도, 밴드부에도, 축구부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무엇 하나 끈기 있게 하는 법을 몰랐다. 어떤 분야든 나보다 재능도, 열정도 있는 아이들이 내 위에 있단 걸 견디지 못했다. ‘내가 노력만 한다면 쟤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 뒤에 틀어박힌 난 그 생각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난 스스로 내 눈을 가렸다.


그런 내가 경쟁이 아닌 문학에 관심을 가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첫 계기는 사소한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눈에 띈 ‘어린 왕자’라는 책이 너무나 예쁘게 생겨서, 그 책에 나오는 여우의 말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서, 그래서 난 내 가슴에 남을 책들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수록 ‘나’라는 사람이 성장하는 게 느껴졌고 그게 내 가장 큰 기쁨이 됐다.


책을 읽는 것에 점점 많은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노력이라기보단 친구와의 놀이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난 책과 친해져 갔다. 점심시간에 공을 차기보다 조용히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좋았다. 수업 시간에 몰래 책을 읽다 걸려도 어린애가 난해한 책을 읽는다며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읽은 책이 한 권 두권 쌓여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달라져 갔다.


그런 일상을 보내던 초등학교 시절, 신동엽 시인 백일장 대회라는 곳에 나가 시 작문으로 꽤 높은 등수를 기록했을 때 처음으로 문학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거의 처음으로 써본 시는 막힘 없이 써졌고 상금과 함께 받아 온 상장을 본 부모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미래에 시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믿으셨고 그 사실을 참 자랑스러워하셨다.


이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의 기억이다. 어쩌면 난 이 순간에 비로소 태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죽음에서 출발한 삶은 죽어도 끝나지 않을 글 속에서 그 생명을 이어갔다. 난 글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쓰는 모든 글 안에는 내가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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