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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Mar 12. 2024

곡선을 걷다

시골에서 자랐다. 전교생이 200명도 채 안 되는 중학교,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게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일지, 아니면 원래 내 성격이 그런 걸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남의 시선을 의식하곤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던 나는 무시받는 것이 두려워 점점 내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바늘로 툭 건드려도 터져버릴 것만 같던 내 어린 시절, 중학교 2학년, 난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방황기를 거쳤다.


흔히들 학교는 약육강식이란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그건 틀린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강’에 속하던 친구들은 제 몸을 한껏 부풀린 채 무시당하는 걸 두려워하던 겁 많은 어린아이였다. 성적은 상위권에 문제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도 최대한 착한 아이를 연기했던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겁쟁이였을 것이다. 온갖 그럴싸한 말들로 나를 포장하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 진짜 내 모습을 감췄다. 그때 꿈이란 건 놀림받기 좋은 약점이었기에 나는 꿈 없는 평범한 아이를 연기했다.


난 꽤나 훌륭한 연기자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연기하던 모습이 언젠가 진짜 내 모습이 될까 두려워하곤 했다. 그래서 더 힘껏 으스대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어두워졌다. 누굴 괴롭히진 않았어도 날을 세우며 살았고 무시받는 것에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친구 이외의 사람들을 밀어냈다. 친구들과 처음 술을 마시던 날 내가 원하던 길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순 없었다. 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그 당시에 난 내게 가장 소중한 건 친구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지만, 그건 아마 거짓말이었을 거다. 내겐 내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친구를 소중히 어겼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단 말을 달고 살았다. 그 말이 모든 일을 어쩔 수 없이 만든다는 건 모른 채 살았다. 소외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좋았을 것을. 어차피 나를 위한 친구였다면 정말 나를 위한 삶을 사는 편이 좋았을 텐데. 아니, 이런 것도 다 거짓말이겠지. 난 언제나 마음을 열지 못했다. 솔직하고 진실한 척 본심을 숨기고 연기한 내 모습만을 보여왔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한 번도 부정당한 적이 없었는데.


여전히 난 내 꿈을 얘기하는 일이 없다. 내가 쓰는 글들이 내가 아닌 작가 아이가 쓴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조차 종종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난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감춰 눌러 왔던 많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고 싶었던 걸지도. 오늘도 난 여기에 점에서 시작된 지난 시간을 눌러 적는다. 이건 분명 부정당하지 않으려고 쓰는 게 아닌 인정받기 위해 쓰는 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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