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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Mar 18. 2024

노력으로 사랑을 할 순 없었다

나는 너의 첫사랑이었다. 15살이었던 내겐 그 사실이 그저 좋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음에도 너를 만난 건 철없던 내 욕심이었다. 그 시절 난 내 생각밖에 할 줄 몰랐기에 너를 그저 장식품 정도로 여겼다. 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별은 내 변덕으로 무심하게 끝이 났다. 너와 보내는 시간들은 싫지 않았지만 주변의 시선과 내가 없는 곳에서 들리는 내 이름이 싫었다. 내 생각과 내가 내린 결정 안에 너는 없었다. 한참 뒤에야, 네가 그때 많이도 울었단 걸 듣기 전까지, 나는 네게 상처를 줬단 사실조차 몰랐다. 첫사랑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난 내가 받은 사랑에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


네 첫사랑과 내 첫사랑은 닮았다. 고백엔 성공했지만, 사랑은 성공하지 못한 첫사랑. 이별 이후에도 끝이 나지 않는 첫사랑.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너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이별을 겪고, 상처를 겪고, 몇 날 밤을 눈물로 적시고도 넌 항상 내게 다가왔다. 나는 네게 내 모습을 겹쳐 보곤 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네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했다. 내게 다가오는 네게 사랑을 느꼈으면 했다.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네가 보답받았으면 했다. 자기중심적에 자기 자신이 세상의 전부였던 내가 변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난 다른 사람의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너에겐 내가 어떤 존재일까. 내가 첫사랑의 그 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날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걸까. 항상 내가 별난 거라 생각했다. 나 또한 평범한 사람이란 걸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걸 깨닫고 나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점에서부터 시작된, 조금 별나고 특이했던 나는, 그렇게 평범한 아이가 되어 갔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받으면서, 사람을 알게 됐다. 내 세상을 넓혀준 건 긴 시간 나를 사랑해 준 너였다. 나는 점점 너를 알게 됐다.


너는 나와 달랐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기분을 맘껏 표현하면서도 속으론 항상 움츠려 있던 너는 연약했다. 아무리 봐도 나를 잘 모르겠다던 너와는 다르게 조금만 봐도 너를 알기는 쉬웠다. 네가 뭘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할지 조차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난 널 알고 있으면서 너를 위해 맞춰주기로 했다. 네 감정도, 기분도, 생각도 알고 있었기에 거기에 맞춰주려 했다. 너는 사랑을 위해 노력했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네게 잘해야 한다는 게 때로 부담이 되곤 했다. 정말 너를 위한다면 맞춰주는 게 아닌 솔직해야 한다는 걸 나는 몰랐다. 어쩌면 내가 놓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너를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노력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진 네 사랑을 응원했다. 정말 늦게서야, 사랑엔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랑을 노력으로 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을 연기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을까. 나는 네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는데, 결국 내가 네게 준 건 상처밖에 없었다. 네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됐는데, 그걸 알고 나자 더는 네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사랑이라 믿고 싶었던 이 감정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널 응원하고 있다. 사랑도, 꿈도, 응원하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단 걸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난 널 응원한다. 모든 사랑을 응원한다. 모든 꿈을 응원한다.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단 걸 알지만 그렇기에 모든 노력이 보답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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