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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Mar 25. 2024

졸업

돌아보면, 중학생 시절엔 뭐든지 잘될 거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체육대회 땐 항상 달리기 대표를 했고 미술부에서 그림을, 밴드부에서 악기를 다뤘으며 성적 또한 상위권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많은 걸 가지고 태어났단 생각이 든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결국 뭐 하나 진지하게 해보지 못한 채 난 나이를 먹었다. 항상 무언갈 선택하려면 다른 무언갈 포기해야 된다는 게 무서웠다. 실패하는 것보다 평범한 어른이 되는 걸 더 무서워했으면서, 성공을 위한 선택을 하는 걸 망설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라는 걸 알게 된다면,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할까.


중학생 시절의 막바지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성적은 좋았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았던 그때 내가 생각했던 건 가장 무난한 선택지였다. 내가 걷는 길 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무난한 선택을 했다. 그 길이 곡선인 줄도 모르고, 방향을 트는 걸 두려워했다. 그 시절, 떨어질 때 눈이 가장 새하얗듯이 다른 아이들은 모두 반짝이던 시절, 나는 이미 더러워져 있었다.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며 살았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내가 저렇게 한다면, 내가 노력한다면 저것보다 훨씬 잘할 텐데 라는 생각을 갖곤 했다. 날 부러워하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어깨는 높아져갔다. 당당히 꿈을 말하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싫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걸 내가 무시하는 아이들이 한다는 게 싫었다. 그리고 그걸 질투하고 시샘했다. 겉으로는 무시하며, 속으로는 질투했고, 마음 깊이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항상 내가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런 내 모습이 악역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싫어졌다.


졸업식을 앞두고 많은 후회를 곱씹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나를 자책했다. 여전히 난 겁쟁이였다. 나는 순수하지도 밝지도 않았다.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숨기며 살았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을 바보 취급하던 내 모습이 내 목을 조였다.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뭘 해도 성공할 거란 확신은 어느새 의심으로 바뀌었다. 나는 정말 성공할 수 있는 걸까.


졸업식 날, 다른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화면에 비치는 과거 영상들에 눈물을 터뜨린 아이는 어떤 기분을 느꼈던 걸까. 나의 졸업식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덤덤한 졸업식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애초에 난 아무것도 졸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찍 철이 들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일찍 늙었던 것뿐이었다. 설렘도 아쉬움도 미련도 후회조차 없었던 졸업식. 아이를 졸업하는 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때 아이가 맞긴 했을까.


애초에 난 아이가 되지 못했나 보다. 순수하게 꿈을 꾸고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라고 부른다면 내 인생에 아이였던 순간은 없었다. 이제야, 스물세 살이 된 지금에 와서야, 난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 거꾸로 흐르는 내 시간은 죽음에서 태어나 어른으로, 그리고 아이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십 년이 넘은 꿈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있다. 언젠가 아이를 졸업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제대로 졸업할 수 있기를. 졸업식 날 눈물을 터뜨렸던 그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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