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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Apr 08. 2024

점을 이어 선을 만들듯

고등학교 입학 첫날, 처음 들어온 교실, 처음 보는 친구들, 그리고 초면임에도 날 알고 있다던 친구들. 시골의 학교는 좁았고 다른 초등학교 다른 중학교를 나와서 일면식도 없는 사이임에도 알아보는 일이 흔했다. 나는 그게 참 낯설었다. 저 아이는 날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나한테 무슨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까. 많은 친구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내 얘기가 올라가는 일이 내게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평범하게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자주 보는 삶이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점점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에 따라 나도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야만 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은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누구의 친구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진심으로 가까워진 친구는 있었을까.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은 점점 급을 나누기 시작했고 새로 알게 된 친구들은 내 급을 보고 다가왔다. 그게 대체 뭐길래.


나는 겉돌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른 그 사람의 속마음을 짐작하는 일에 구역질이 났다. 나 또한 생각하는 것과 입으로 뱉는 말이 달라졌고 그 괴리감이 목에 메였다. 겉돌기 시작할수록 소속감을 원했고 그럴수록 괴리감은 심해져 갔다. 오래된 친구들은 점점 엇나가기 시작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새 급을 나누는 데에 익숙해진 나는 혼자 떨어지는 게 싫어 거기에 자주 어울리곤 했다.


친구들이 없이는 내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을 무서워하고 쉽게 섞이지 못하는 주제에 난 혼자 살 수 없었다. 친구들은 점점 더 방황기를 겪었고 어느 순간 이제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길을 똑바로 걸어가지도, 길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아무 일도 없이 나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어차피 가까워질 수 없던 사이, 차라리 잘 됐다며 후련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불안함이 남았다.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도 혼자가 될 수 없었던 나. 난 고독에 민감했다. 많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도 어쩐지 그 안에 섞이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기숙사에서도, 난 혼자이지 못했지만, 언제나 혼자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잘만 사는 줄 알았다. 나와 닮은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쉽게 친구와 어울리지 못해서 혼자가 됐던 너. 비슷한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우린 비로소 혼자가 아니게 됐다. 무리에서 동떨어진 점이었던 우린 그렇게 이어졌다.


점은 선을 만들고 선은 이어져 모양을 만든다. 내 주변에도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우린 서로를 닮아갔고 난 점차 내가 걸어온 곡선에서 벗어났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난 왜 그걸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혼자 살 수 있단 말이 아니란 건 몰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혼자가 아니게 되고 나서야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됐다. 별도 별자리가 있듯이,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섞이지 않고 하나의 모양을 잡아갔다. 곡선이 아닌 하나의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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