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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Apr 15. 2024

촛불의 일렁임을 사랑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사랑했다. 온갖 고민과 좌절에 상처 많은 모습이 예뻐 보였다. 내 사랑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상처 없는 이들을 혐오했고 웃음 뒤의 감정들에 이끌렸다. 아프고 괴로워도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을 사랑했다.


많은 사랑을 했다. 사랑 얘기엔 웃음보다 상처가 더 많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랑에 몸을 던졌다. 사랑이 보답받는 일은 없었다. 내 사랑은 나를 불태우며 시작해 그 불길이 상대에게 닿지 않게 꺼졌다. 사랑을 하는 것보다 사랑을 받는 게 무서웠다. 깊어지는 관계를 두려워했다. 아픔 없는 사랑은 없다고 믿었고, 어느새 아픔 없이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난 아픔을 사랑했던 걸까. 상처투성이가 된 팔로 울던 너를 안아준 건 그래서였을까.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순수하고 풋풋했어야 할 나이에 우리는 서로 상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런 너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네 아픔을 사랑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힘들 때 받고 싶었던 위로를 너에게 하면서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난 나를 사랑했을 뿐이었다.


너는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네가 좋아했던 건 나였을까, 아니면 너를 위로하는 내 모습이었을까. 그때 우리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길지 않은 우리의 만남은 고백도, 사랑한단 말 한마디도 못한 채, 네게 다른 남자가 생기며 끝이 났다.


네가 행복해지길 바랬다.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우린 서로의 불행을 나눌 뿐이었다. 그 뒤로도 너는 힘든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를 찾곤 했다. 사랑한단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널 사랑한단 걸 모를 리 없는 너인데. 나는 그게 싫었다. 네가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에, 네가 더는 나를 찾지 않았으면 했다. 정말 내가 널 사랑했다면 네가 날 찾아주길 바랬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점점 뜸해지는 연락에 안심했다. 내가 있을 필요가 없어져야 네가 행복한 걸 테니까. 그게 참 아팠고, 난 아파야만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아픔 없는 사랑을 할 수는 없을까. 아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랑을 할 수는 없을까. 항상 빛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난 언제나 불나방일 뿐이었다.


정말 힘들었던 시간에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시절이 잊히지 않는다. 나누지 못한 슬픔은 안에서 돌고 돌아 굳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굳어버린 슬픔이 아직도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아파하는 이들에게 끌리나 보다. 거기에 데일 걸 알면서도, 난 항상 촛불의 일렁임을 사랑했다. 녹아 흘러내리는 네 슬픔이 쌓이지 않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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