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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Apr 22. 2024

내 그림자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 행복을 위해 살기보다 불행을 피해 살아간다. 불행 속에 던져져야 행복을 꿈꿀 수 있는 법인데. 난 불행을 피해 살면서도 행복해지길 원했다. 아마 그게 내 불행의 원인이겠지. 난 행복을 꿈꿨기 때문에 불행 속에 던져졌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지만 그게 내 길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학업을 놓지 않았던 건 실패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면 적어도 실패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꿈을 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난 행복을 꿈꿨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체 왜, 나는 행복해지지 못하는 걸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학업이 점차 버거워졌다. 그리고 실패하는 게 두려워 학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글과 책을 미뤄두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렇게 불행을 피하려 노력할수록, 행복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이렇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부턴가 ‘차라리 행복을 꿈꾸지 않았다면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로는 이과를 선택했다. 취업이 잘되기 때문이었다. 현실은 어린아이의 상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다행인 걸까, 아니면 불행인 걸까. 머리로는 이상을 추구하며 정작 펜으로는 현실을 그리는 자신에 괴리감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세상은 점점 좁아졌다. 그리고 그 답답함에 숨이 막힐 때마다 공황 발작이 찾아왔다. 그게 반복되고 쌓여서 어느새부턴가 하루 중 절반은 멀쩡한 정신으로 다닐 수 없었다.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여전히 이불 안이 내 도피처였다. 난 도망치듯 살아왔다.


힘든 날들 속에서도 성적은 계속 올랐다. 그게 뿌듯하게 느껴지던 순간, 마음속에선 꿈을 포기한듯한 내 모습에 혐오감이 들었다. 완전히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글을 쓰던, 공부를 하던, 이미 극단으로 치솟은 마음속에선 모두 아무 의미 없는 듯 느껴졌다. 지독한 무력감. 뭘 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불쾌함과 인생에 대한 지나친 회의감. 그게 내 정신을 갉아먹었다. 곧잘 웃던 예전과 다르게 점차 웃음을 잃어갔고 그게 거짓 웃음이었을지언정 웃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달랐다.


내가 싫었다. 온갖 고민에 불안해하며 매일 밤 내일은 더 노력하겠다 다짐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모두 잊어버리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우울하단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괴로워서 도망치고, 도망친 내 모습에 더욱 괴로워졌다. 완벽한 하루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데도 조금이라도 어긋난 하루를 보내기 싫었다. 그 하루가 쌓여서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시간에 쫓기기만 하는 삶. 시간이 쌓일수록 숨이 막혔고,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이 두려웠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살라는 말은 전부 개소리다. 난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나는 참 바보같이 살았다. 처음부터 해야 할 일을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 난 뭐 하나 제대로 해온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의 꿈을 평생 가지고 살 거란 걸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왜 난 내 길을 걸어가지 못했던 걸까. 그렇게 아파하며 난 뭘 원했던 걸까.


나는 불행을 원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불행 속에 나를 가두고 최소한 꿈을 잃지 않은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걸지도. 행복해지기 위한 불행이라 생각했는데, 난 불행만을 보면서 살아왔다. 그림자가 아니라 빛을 볼 수는 없을까. 불행 속에서만 행복을 꿈꿀 수 있는 거라면, 불행했던 시간만큼 행복할 시간을 쫓고 싶다. 흰색 종이를 바탕으로 쓰이는 검은 글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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