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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Apr 01. 2024

알 속의 새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알 속에서 태어났다. 자신보다 작은 알 속에 갇힌 새. 점 안에 갇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알게 된 새. 알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건물은 넓었지만, 그 안은 좁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혼자일 수 없는 장소. 자습 시간엔 감시하듯 사감 선생이 돌아다니고 쉬는 시간에도 주위의 시선이 있는 그곳에서 나는 글을 쓰지도, 음악을 하지도 못했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들어왔을 기숙사에서 나는 꿈을 잃었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만 했을까.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희망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졌던 순간, 중학교 시절의 자유를 그리워하며 선택을 미뤄왔던 날들을 미친 듯이 후회했다. 내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게 내 몸을 죄기 시작해서야 후회를 반복했다. 3년이란 시간을 이렇게 버티고 나면 괜찮아질까. 3년이 지나면 이미 돌이킬 수 없지는 않을까. 잊고 살았던 불안장애는 평온했던 시간의 이자까지 받아내듯 순식간에 몰아닥쳤고 내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발작이 시작됐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공기는 날카롭게 폐에 꽂혔다. 떨리는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루를 버텼다. 또 하루를 버텼다.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단 말을 믿으며 버텼는데, 그 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눈물자국을 따라 시간이 흘렀다. 팔에도 눈물자국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남의 시선에 예민했던 내겐 그것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남들한텐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난 곧잘 이불 안으로 숨곤 했다. 17살의 난 이불을 껍질 삼아 부화하기 직전의 병아리처럼 그 속에 틀어박혔다. 세상 밖의 별이 되고 싶었는데, 내 세상의 밖으로조차 나가지 못했다. 그 안에서 태어난 건 고통뿐이었다. 고통 없이 얻는 건 없다던데, 그렇다면 모든 고통엔 얻는 것이 있는 걸까. 내가 겪은 고통에서 얻은 건 도대체 뭐였을까. 고통으로 성장할수록 좁은 내 세계는 나를 더 옥죄어 와 고통스러울 뿐이었는데, 난 고통으로 고통을 얻었던 걸까.


그 발작이 공황장애 때문이란 걸 안건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때 난 내게 문제가 있단 걸 알고 있었지만 정신과에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다들 힘든 시기니까,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그저 내가 약한 거라고, 내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나약한 내가 싫었고 자존감은 갈수록 떨어졌다. 악순환이었다. 고통은 내 안을 돌고 돌아 계속 쌓여만 갔다.


무슨 글을 써도 왠지 모르게 어두워지는 건 그래서인가 보다. 내 안에서 굳어버린 고통은 까맣디 까매서 연필에 박힌 흑연처럼 글을 쓸 때마다 검정 색의 글씨를 만든다. 알 속의 새처럼, 작은 몸속에 많은 고통이 태어났다. 그 많은 연필심이 다 닳도록 글을 쓰고 나면 그다음부터 쓰게 될 글씨는 무슨 색이 될까. 개나리처럼 노란빛의 글씨를 나도 언젠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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