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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Mar 04. 2024

점과 점 사이엔 사랑이

첫사랑의 그 아이는 노란빛이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빛깔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내 첫 고백은 꼴사납게 성공했고, 내 사랑은 성공하지 못했다. 나와 같은 반이었던 그 아이는 작가를 꿈꾸고 있었다.


이제 와서 내게 남은 첫사랑의 기억은 장래희망을 발표하던 시간, 당당히 칠판에 작가라는 단어를 적던 네 모습 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내 꿈은 소설가였다. 아니, 어쩌면 네 덕분에 소설가라는 꿈을 꿨던 걸지도 모른다. 나와 똑같이 책을 좋아하던 너, 조용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너, 개나리가 피는 계절 노란빛을 내던 너, 책을 쓰고 싶어 하던 너. 첫사랑 같은 건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떠올리다 보니 남아있는 기억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나는 커서 책을 쓰고 싶다.’ 어렸던 내게 그 말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네가 했던 그 말은 내 안을 한 바퀴 돌고선 내 입으로 다시 나왔다. 내 첫사랑, 내 첫 꿈. 그때부터 책은 언젠가 내가 써야 할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책으로 나를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언젠가 커서 내가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책을 네가 읽어 줬으면 했다.


너한텐 말하지 못했다. 교실에선 시끄럽고 책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내가 실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조차도 너에겐 말하지 못했다. 네 꿈을 응원하고 나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 대신, 나는 평범한 남자로 너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우린 평범하게 만나 평범한 열두 살의 장난 같은 연애를 했고 그 만남은 웃음 없이 시작해서 눈물 없이 끝났다. 사실은 내게 넌 특별했는데, 나는 네게 특별해질 자신이 없었다.


너는 여전히 작가를 꿈꾸고 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창가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할까. 몰라보게 달라져 있을까, 아니면 내 기억 속 그대로일까. 혹시 길을 지나가다 마주치지는 않았을까. 너는 날 알아봤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시내의 약국 앞에서 마주쳤던 그날, 너는 나를 알아봤을까. 초등학교 시절의 장난 같던 연애를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는 날,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먼저 눈을 돌렸고 먼저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네게 자신이 없었다.


첫사랑은 잊히지 않는 법이란다. 그 첫사랑이 이뤄지지 못했을 경우엔 더욱 잊히지 않는다. 작가란 꿈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던 것도 그래서인가 보다. 그건 절대 잊히지 않는 것일 테니까. 내 꿈은 점에서부터 시작되어 사랑으로 그 형태를 다듬었다. 그건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지금 이 글을 쓰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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