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은 '선'으로 존재한다 한 가지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따져 그저 일렬로 세워질 뿐이다 그 판단 기준이 늘 같지는 않지만 선은 그 사람의 일부분도 나타내지 못하기에 대게 흘겨보고 만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 비로소 사람은 '면'이 된다 겉으로 드러낸 하나의 면이자 두 개 이상의 판단 기준이 겹쳐져 만들어내는 그 사람의 장단점 흔히들 첫인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까워진 사람들은 내게 '입체'로 다가온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면들이 보이기에 섣불리 비교할 수 없는 까다로운 입체 그 입체의 모든 면들을 보는 일은 드물어서 때론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도, 내게 '점'으로써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어떤 기준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그저 순수한 한 지점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점'은 '구'와 닮았다 아니, 닮았다는 표현보단 닮았을 거라 믿는단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점은 그 자체론 어떤 형상도 갖지 못하지만 우리는 점을 떠올릴 때 대체로 구의 형상을 떠올린다 어떤 기준으로도 판단할 수 없으면서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도 같은 결론이 나는 그야말로 사랑은 '점'이자 '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끝이 난 사랑 또한 점 혹은 구로써 내 안에 남는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한 지점이 되거나, 사랑이란 감정을 머금고 줄곧 내 안에 머무른다 뭐가 됐든 몸에 박힌 점처럼 평생 내게 남을 기억이 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점이 두렵다 모든 이야기는 점으로 시작하여 점으로 끝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