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이라는 세월이라 부를 순 없지만 시간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긴 내가 살아온 그 시간들을 나는 도망쳤다. 난 나를 마주하지 못했다. 늘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굳게 믿었건만 난 뭐 하나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한 채 내가 믿고 싶은 내 모습을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게 진짜 내 모습이 아님을 깨달은 요즘 무너지는 하루와 용기를 낸 하루와 마주한 하루를 보내고 허무를 살다가 죽다가 정신을 차린 문득.
나는 여기 있다.
나는 늘 한 사람. 두 명일 수 없는 한 사람. 둘인가, 셋인가, 넷인가, 다섯,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나를 알고 있는 건 몇인가. 그 안의 모습은 나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나인가. 아니, 나는 여기 있다.
어리석은 나를 봤다. 허울뿐인 나를 봤다. 못난 나를 봤다. 약한 나를 봤다. 세상의 온갖 욕을 끌어 모아 형용해도 형용하지 못할 나를 봤다. 사랑을 하는 나를 봤다. 남을 위하는 나를 봤다. 나를 위하는 나는 보지 못했지만 나만을 알던 나를 봤다. 너를 나인 양 알았다. 그래도 나는 여기 있다.
본질엔 뜻이 없다. 거기엔 모습이 없다. 나는 나를 봤다.
아해의 모습으로 남아 살아가겠단 의미가 무색하게 풋내 따윈 없이 나는 여기 있다. 난 홀렸는지도 모른다. 여우 한 마리 살지 않는 카페의 항상 듣던 음악 속에서 타르의 새까만 형체에 홀렸는지도 모른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마주한 나와 일각, 이각, 정신을 차린 문득. 난 알았다. 알아버렸다. 나는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