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뛰쳐나왔다 의자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만지작 거리다 정신이 나갔다 돌아왔다 냅다 주방으로 달려가 칼을 쥐었다 놨다 장난도 쳐보고 제 팔을 긁었다 쥐었다 손톱을 잘랐음에 화가 나기도 정신이 들기도 아니, 정신이 들었나 아니다 그런가 누웠다 잠에 들었다 일어났다 또다시 그렇게.
작은 방 안의 메아리는 울려 퍼지지 않는다. 울려 퍼지는 건 전파뿐이다. 난 그 메아리에 정신을 놔 버렸는지도 모른다. 모니터는 할 일을 비추고 화면은 세상을 보여준다 믿었 건만 나는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건가 아닌 건가 당최 나는 혼란스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야 마는 것이다.
사람이란 어찌 이리도 작은 뇌를 갖고 태어났는 간 말이다. 멀쩡히 살아가고자 결심한 내가 곧장 망가진 것은 망가짐이란 것이 혹 멀쩡이란 단어와 퍽 어울려서가 아닐까. 아, 또다시 무기력함이 몰려온다. 아직 난 이 가증스러운 모니터를 쳐다보고 말을 하기 위해 말을 기다리는 우스꽝스러운 일상이 반복된다.
인간의 기술이란 참으로 비약하여 없던 일도 사실로 만들 수 있나 보다. 어쩌면 전 세계의 사람들을 정확히 절반으로 가를 수 있을지 모른단 생각도 든다. 나는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도 보았다 액정을 들여도 보았다가 말을 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는 이들의 입은 사실 열개 정도 되지 않을까를 고심했다. 나는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다.
이제는 아스팔트가 피를 흘렸단 일까지 듣게 됐다. 피 흘리는 아스팔트라니 그렇다면 도로 위의 차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밟고 지나감과 다름없지 않은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내가 아스팔트로 변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썩 유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이랑 썩 다를 것도 없다. 우린 본래 새까맣게 탔으니, 우리라 믿고 사는 모든 건 까만색 위로 떠오르는 색색들의 감정들에 불과하니.
이제 우리는 서로의 감정까지 알게 되었음에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다. 우리는 모두 합하여 둘이다. 손이 없는 인간을 제외하여 둘이다. 왜 하나가 아닌즉 그건 무료하고 따분하여 자칫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목을 매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진정 우리는 하나가 되겠지만 손이 없어지므로 안된다. 그것만은 안될 것이다.
나는 또 가만히 앉아 이 작은 방 안에 메아리친다. 내 심장 소리는 너무도 커서 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문득 창문을 열었다. 이 방에 들어 산 이래 처음으로 바깥을 보았다. 과연 아스팔트는 피를 흘리고 사람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다. 어쩌면 저건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돼야 아스팔트가 저리도 아파할 테니. 나는 방 안에서 눈을 감고 빌었다. 심장아 뛰어라. 나를 죽이고 나아가 메아리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