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과연 축복인가. 살아감엔 반드시 좋은 일이 따르나. 그렇다면 우린 왜 이리 힘들어야 하는 건지.
태어나기를 태어났고 한낱 한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갖지 못함이 무엇이 있들 우리가 가진 의미가 대체 뭐길래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나 당최 어느 대단한 의미가 있길래 이토록 힘들어야 하는 건가. 날씨만 밝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어느 날 오후의 한적한 일상에 묻는다. 삶은 과연 축복인 둥 살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들은 일어난다는 그런 뻔한 말들은 하고 싶지 않다. 멍청함에 힘든 게 아님을 멍청한 얼굴로 웃고 떠드는 사회인이란 것들보다 잘 아는 아해의 한 마디를 적을 뿐이다.
죽지 못해 사는 거라 생각한 어느 때가 있었다. 삶에 가진 미련이 크다 생각하였지만 그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원대한 계획이오 죽어도 하고 싶었던 일들이란 과연 죽음 앞에선 그 의미를 한 줌 남기지 못하니 역설적이게도 삶은 죽음 앞에서의 무의미였다. 나는 게서 도망치며 살았다. 그렇기에 난 꿈을 붙잡았다. 꿈이란 내게 삶이었으니까. 그 동아줄을 덥석 잡아버린 것이다.
이 동아줄은 과연 썩은 동아줄인가. 높이가 높아질수록 그 끊이 끊어졌을 때 받을 충격은 더할 것이니 몇 번이고 중간에 줄을 놔버렸다. 지금에야 나로선 이 줄 없인 살 수 없구나 싶은 둥 썩은 동아줄이라도 끝까지 잡아보자 하는 마음에 꽤나 높이까지 왔지만 올라와보고서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떨어지는 건 겁낼 게 아니란 것이다.
아등바등 참으로 부질없게 살아온 나지만 그 부질없던 세월이 결국 나를 만들었다. 사람을 밀어냈고 세상 혼자 살던 나임에도 참 많은 것들을 받으며 살아왔다. 나는 나인즉 싫어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지 않은가. 딱 그 정도면 된다. 억지로 자신을 좋아할 이유도,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낼 이유도 없다.
행복, 그래, 세상 사람들은 걷는 법도 모름에 나는 것부터 꿈을 꾼다. 행복이 오기를 굳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가엾다. 행복하지 않음에 자신을 불행하다 믿는 이들은 더없이 가련하다. 못난 내 경우 난 늘 임종 직전의 행복을 원하며 삶을 산다. 행복이란 순간이 찾아온다면 난 미련 없이 내 목을 매달고 저 멍청이들을 향해 웃어 보일 것이다. 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그렇게 난 행복 같은 게 없이 이리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갖고 태어난 의미인즉 그런 것이다. 이를 본질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멍청이들은 그동안 제가 많은 것들을 쌓음에 행복할 거라 믿지만 그런 믿음이야 말로 실로 부질이 없다. 그렇기에 그저 웃어 보인다. 삶은 그 자체로 삶이다. 살아감엔 그저 살아갈 뿐이다. 누군가 내게 왜 죽지 않느냐 물으면 난 대답해 보이리 난 아직 행복하지 못했으니 세상의 모든 행복을 믿으며 사는 이들에게 웃어 보이며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