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저도 어른이 되어야 하겠지요. 이유 모를 상실감에 시달리는 요즘 부쩍 아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게만 느껴집니다. 아이는 상실을 겪고 어른이 된다고 믿습니다. 상실의 아픔에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마음먹고 소유하기 시작하며 소년은 남자가 됩니다. 하지만 저는 당최 무엇도 소유하려고 들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누군갈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 따위 눈곱만큼도 않는 마음이 근래 들어선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만큼 저는 어른이 되진 못했단 겁니다.
저는 사랑이 나누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비단 연인 사이에 그치지 않고 무릇 세상의 모든 사랑엔 나눔의 의미가 깃든다 생각했지요. 그렇기에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일 터인데 어찌 사랑은 쟁취가 될 수 있는 건가요? 누군갈 있는 그대로 아끼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어째서 상대를 소유해야 하는 걸까요. 알 수 없는 상실을 겪고 무엇도 소유하지 않는 나라는 사람이 이토록 초라해 보이는 지금에야 조금은 어른을 이해하게 됐거늘 당최 저는 소유라는 개념만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보고 관계를 맺는 게 싫었습니다.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만 나를 필요로 하는 관계에 싫증이 났습죠. 한데 이제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고서야 나 자신의 가치에 의심을 시작했습니다. 무엇도 가지지 못한 나는 무엇도 아닌 존재인 걸까요. 사랑받을 가치란 게 세상에 존재한다면, 사랑에 가치란 게 붙기 시작한 세상이라면, 나만큼 비루한 인간이 또 존재할까요.
그렇게 자신을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비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헐뜯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나치게 어둔 밤을 보내고 울고 후회하고 좌절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나는 비로소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래도 아이가 되고 싶다. 어른이 되지 못해서가 아닌 어른이 되어야만 해서 괴로운 아이가, 누군갈 갖지 못해서가 아닌 사랑하지 못해서 외로운 아이가, 자신의 나약함 때문이 아닌 누군가의 무너짐 때문에 슬퍼하는 아이가 되고 싶다.
나는 내가 언제나 아이이길 바란다. 사람에 상처받고 세상에 좌절해도 홀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이길 바란다. 사람의 더러움에 본성의 추악함에 숨져 누울 때조차도 마음을 찾길 바란다. 방황하고 지치고 쾌락을 탐하고 욕망에 충실하더라도 결국엔 다시 돌아 마음을 추구하길 바란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네가 옳은 걸지도 모른다. 네 덕에 세상 사는 법을 배웠다 생각하던 때조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 이 상실의 의미가 내가 어른이 됐음으로 이뤄지는 걸 원치 않는다. 나는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