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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네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로제타.

by 글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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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바닥엔 부츠가 필수다.

부츠를 신지 않으면 발걸음을 뗄 떼마다 처덕거리는 진흙을 감당할 길이 없으므로.

그래서 로제타는 매번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부츠를 신는다. 진흙바닥같은 집에서 제대로 걷기 위해.

영화 내내 로제타의 얼굴엔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상처받은 것 만 같은, 어딘가 냉담한 눈동자를 가진 로제타의 얼굴이지만

영화의 첫 시작은 로제타의 뒷 모습부터 시작한다.

씩씩거리며 어딘가로 빠르게 돌진하는 듯한 로제타의 뒷 모습을 담는 카메라는 여지없이 흔들린다.

가차없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로제타 그리고 그녀의 삶은 그래서 매번 불안불안 하다.

갑자기 수습이 끝났다며 해고당한 로제타로 시작하는 이 영화가 부여한 로제타의 삶은 무겁고 또 무겁다.

로제타를 먹여 살릴 능력 없이 오로지 술과 섹스에만 의존하는 엄마, 돈이 없어 트레일러 파크에서 살고 있고 이제 좀 돈 좀 벌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수습이 끝났다고 해고당했다.

생리통으로 배가 아프지만 살림살이가 부족하고 돈이 부족한 탓에 헤어드라이어로 간신히 아픔을 달래는 게 일쑤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으며 시내를 전전하는 로제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항상 부츠로 바꿔 신는 장면은 아프다.

로제타에겐 그 루틴이 너무 당연해졌다는 것 또한 아프고.

하지만 그런 진창속에서 엉망진창인 줄만 알았던 그녀의 무거운 삶에도 대가 없는 빛은 다가오고

이는 바로 리케라는 친구다.

이미 이 세상에 기대라곤 한 톨도 없는 로제타에게 성큼 다가온 리케는 토스트도, 맥주도, 어딘가 어설픈 그가 연주한 드럼 소리도, 그리고 웃음도 선물한다.

로제타가 영화 내내 웃지 않다가 처음으로 미소 짓는 순간은 리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의 집에 놀러가 처음으로 집을 벗어나 잠들기 전 로제타가 자기 자신에게 마치 주문을 걸 듯이 다짐하는 듯한 장면에서의 로제타는 눈물겹다. 처음으로 삶의 무게를 잠깐이나마 내릴 수 있었던 공간에서 잠을 청하기 전 그녀는 '네 이름은 로제타' 그리고 '내 이름은 로제타'로 2인칭과 1인칭을 번갈아 사용하며

그녀 자신에게 용기를 준다.


이제는 조금 더 삶이 평범해질거라고. 이제 일 자리도 얻었고 날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 친구도 알게 됐고. 이제는,

좀 더 나아질거라는 어렴풋한 기대감에 그렇게 자신에게 조용히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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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다시 모든게 허사가 되고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로제타는 더 이상 이 무거움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나마 그녀의 삶에 잠시 깃든 빛을 뺏어 쬐지 않으면 더 무거워질 거란 생각밖에 할 수 없던 로제타는 그녀에게 손을 매번 내밀어주던 리케를 배신한다. 그

그나마 한 줄기 남아있던 빛으로 로제타의 삶에 생긴 구멍을 하나 메꿨지만,

그녀가 삶에 내어주어야 했던 빛이 그녀에게 가져다주는 공허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공허한 마음을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다시 부츠를 신고 도착한 집엔 로제타에게서 도망친 엄마가 정신을 잃은 채로 문 앞에 누워있다.

다시 한번 로제타는 엄마를 짊어매고 방에 뉘인 후 물을 끓인다.

가스를 다 썼다는 사실을 알아챈 로제타는 그저 텅 빈 눈으로 주인을 찾아가 돈을 지불하고 새 가스통을 받은 후 이제 가스통을 들고 집으로 오는 길, 가스통도 그녀의 발걸음도, 그녀의 마음도 무겁기만 하다.

그리고 애써 그녀의 삶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무시하며 걸어오고 있던 그녀를 다시 한번 리케가 찾아왔다.

그리고, 로제타는 울음을 터뜨렸다.

매번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보게 되는 로제타의 삶은 너무 위태롭고 그래서 그녀의 뒷모습을 안아주고 싶다가도 그런 위로마저도 로제타는 받아들일 여유가 없을 것만 같아 뒷걸음질 치게 될 만큼,

딱 그 만큼 로제타의 삶은 무거웠다.

그렇지만 또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준 리케가 있었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리케의 손을 맞잡은 로제타의 삶이 조금은 가벼워졌길,

그녀의 부츠가 언젠간 비 오는 날에만 신는 신발로서만 기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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