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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London<9>
니들 영어 발음이 더 구려

In 2017

by 글너머

파이브 가이즈 일은 나름대로 수월 했다.

closing shift가 너무 늦게 끝난 다는 것만 빼면.

일도 쉬웠고, 물론 좀 쎄-한 여자애들은 있었지만 날 챙겨주는 좋은 애들이

없는게 아니었으니. 그걸 위안 삼아 어떻게 어떻게 일을 다녔다.

파이브가이즈의 장점이자 단점은 일이 너무 쉽고 일에 비해 돈을 벌 수 있단 게 장점이지만

또 한편으로 일이 쉬우니 안주하게 되고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할 동기부여가 그다지 되지 않는 달까..?


연애도 시작했으니 일 하고 쉬는 날에 남자친구 만나고

이 생활이 편하고 좋았던 것 같다.

오프가 맞았을 때는 남자친구가 Southend on sea라는 근교도 데려가 주고

잘 놀았다.

IMG_3231_Original.jpeg


근데 가끔씩 내 심기를 건드리는 놈들이 있었는데

매니저 놈들. 그것도 딱 두명이 있었는데 제일 악질이었던 놈은

이탈리아 애였다. 나보다 나이도 어렸던 게

내 영어 발음은 나쁘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영어 발음엔 특유의 accent가 적은 편이다.

그때는 미국 accent를 썼어서 종종 미국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말마따나 유럽 애들의 accent 같지는 않고

고로

내 영어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다. 적어도 의사소통에서는.

근데 이 이탈리아 매니저 중에 한 놈이 이름도 똑똑히 기억난다. 안토넬로.

얘는 날 은근슬쩍 무시하는 태도가 항상 깔린 채로 날 대했다. 처음엔 그냥 시크한 애인가보다 생각했고

외국인들이 저렇지 뭐 라고 넘어가려다가도 가끔씩 기분에 영향을 줄 만큼의 불친절을 나에게 던져줬는데


하루는 이제 틸 말고 다른 포지션을 한번 배워볼래 하는 거다.

나도 틸이 너무 지겨웠고 새로운 포지션도 해보고 싶었으니 잘됐다 해서 '드레싱' 코너로 갔다.

'드레싱'포지션은 오더가 들어오면 손님이 고른 토핑을 넣어서 패티, 즉 고기를 넣기 이전까지

전달 해주는 포지션인데 아무래도 토핑이 많다 보니 손이 빠르고 날래야 한다.

나 느리지 않고 일 못하는 편 아니라고! 근데 진짜 처음이고, 그래서 초반에 아주 잠깐 허둥 댔는데

안토넬로 걔가 가르쳐줄 때부터 못마땅해 하더니 막판엔 한숨을 쉬는거다.

아주 대놓고.

영어로 뭐라뭐라 하긴 하는데 뭔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니 accent가 하도 세서

모르겠다고!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니까 내가 영어를 못해 그렇다는 식의 눈빛.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대놓고 나도 표정을 썩혔다.

틸에 다시 돌아가 다시 곱씹어보니 눈물 날 만큼 억울 한거다.

아니 내 영어 실력도 실력인데 니 영어는 얼마나 잘났길래?!

처음으로 일하는 곳에서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정말 꾹 참고 화장실로 대피해

화장실에서 울었다. 억울하고 화나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틸로 복귀 했지만 그때 이후로 그애에게 나도 호의적으로 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걔는 후에 다른 지점으로 떠났나 그랬다.


얘 말고도 내가 실수 한거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유럽 여자 애들 1-2 명이 있었는데

그때는 당연히 많이 상처가 됐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그랬으면 말을 안해, 파이브가이즈 틸만 가르쳐 줘 놓고

뭘 더 바래?

지금 같으면 그렇게 말했던 애한테 곧장 가서 논리적으로 내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뭐가 잘못된 것 같냐고 따졌을 테지만 그때는 심리적으로 작아져 있던 지라

속으로 혼자 씩씩 대고 말았다.


근데 진짜로

걔들 영어 실력이 더 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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