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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코랄리 파르자

강렬해서 색달라 보이지만,

by 글너머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서브스턴스의 스타일은 좋았다.

잘 만들어져 매끄럽게 볼 수 있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독보적인 스타일이 가미되어 있는 영화에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인데 서브스턴스는 전체적인 색감도, 카메라 구도도, 과하다 할 만큼의 클로즈업도

그래서 좋았다. 물론 독립영화나 좀 특이하다 싶은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뭔가 익숙한 영화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달까.

유니크한 스타일 덕에 영화에 몰입감을 처음부터 확- 하고 가져다줘서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영화를 보러 간 나를 칭찬할 수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스타일리쉬했고 왕년에 스타였던 엘리자베스 스파크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대중들에게 잊혀져 가는 존재가 됨을 스타의 거리에서 그녀의 구역을 밟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와 뉘앙스에서 표현하는데 난 이런 뭉근함이 너무 좋다.

노골적이지 않지만 노골적이지 않아서 더 잔인하게 알맹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크의 스타 사인에서 셀카를 찍기도 하고 엘리자베스 스파크가 너무 좋다는 팬들의 대화들이 쉴새없이 들렸던 그녀의 구역에선 이제 점심 뭐 먹으러 갈래 같은 일상적인 대화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점심 메뉴를 고르는 건 그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누군가에겐 그게 꽤

아플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엘리자베스 스파크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대화에서 전혀 스포일러를 모르고 들어갔던 난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점점 잊혀져가는 대중들에게서 다시 그녀의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한 뭔가를 하려는 것이구나- 하고.

이렇듯 난 조그만 디테일로 관객들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영화를 더 좋아하지만,

서브스턴스는 안타깝게도 그쪽은 아니었다. 좀 더 소리치는 쪽에 가까웠지.

이야기 자체는 사실 평범한 것이었다. 물론 이야기의 본질을 말하기 위해 붙인 설정은 나름 유니크 하다고 느꼈다. 7일, 활성제, 진정제 같은.

그리고 역시 서브스턴스가 '미친 영화' 라는 별명이 붙은 건 이 영화가 몸을 어떻게 다뤘는지 때문일 것이다. 잔인하게 찢어지고, 꼬매고, 터지는게 여러번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잔인하냐 물으면 또 그건 아닌게 그 지점부터는 아마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그런거 아닐 까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바디 호러 작품은 필연적으로 다소 부족해지는 현실감 덕에 어찌 보면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건지도.

하지만 설정 말고서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단순했다고 생각한다.

젊음에 대한 집착, 집착의 영원한 짝꿍인 욕심, 역시 욕심의 손을 꽉 잡고 있는 과오, 그 과오로 인한 파멸. 단순한 주제지만 이 단순한 본질을 자극적인 볼 거리는 좀 더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고 서브스턴스도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강렬함으로 우리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것과 단순히 강렬하기만 한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난 서브스턴스는 후자 쪽에 좀 더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점부턴 예상이 가능해졌고 이야기도 조금씩 늘어지는 게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계속해서 관객의 눈과 머리에 주입하는 엘리자베스 스파크(데미 무어)의 이미지들은 있었지만서도.

이야기보단 이미지의 힘으로 영화를 끌고 가는 듯 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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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 영화에는 뭉근함이 없었다.

서브스턴스는 뭉근하지 않은 영화라 미친영화라고 불리는 건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박한다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서브스턴스의 스타일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다.

바디 호러 말고도 관객을 확-하고 사로잡는 강렬한 연출같은 것.

하지만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들에 뭉근함이 없이 너무 서슴없이 툭툭 내뱉는 것 같았다. 이미지 말고도 대사로, 글자로. 난 영화가 너무 노골적으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면 그건 그거대로 거부감이 드는 편인게(아마 내 성향이 이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 것 같아서랄까. 청개구리 심보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느꼈더라도 영화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계속해서 대놓고 정답을 알려주면 '난 이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는데 왜 계속 먼저 스포일러 해!'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다시피 완벽한 페미니스트 영화였다. 젊음에 황홀해하고 세월에 절망하는 주체는 주로 여자들 쪽이며, 여자들이 그런 의식을 가지게 된 원천은 사람들, 아니 주로 남자들의 시선과 반응 그리고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자들을 비롯한 대중들의 사랑으로 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특히 자아를 잃기가 쉽고 남자들이, 대중들이 원하는 '그' 이미지에 날 맞춰가다 보면 자연스레 나라는 사람을 잃었음을 마주하게 된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자주 겪는 문제.

그래서 엘리자베스 스파크도, 수(마가렛 퀄리)도 스크린에 대고 Take care of yourself, 즉 너 자신을 잘 돌보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들은 그들 자신을 제일 돌보지 못했다는 것.

가장 자기 자신을 잘 돌볼 수 없는 세계는 위험하게도 아름다움으로 위장되어 있고 그 겉모습에 우리는 현혹되어 외양만이 나를 돌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악순환.

그래서 마지막 결국 괴물이 되어버린 엘리자베스 스파크가 마치 대중들을 상징하는 듯한 관객들에게 피를 쏟아내며 그들의 눈을 피로 적시고 가리는 장면은 제발 좀 그런거 집어치우라고 포효하는 듯 했다.

그리고 역시 그런 괴물을 죽이는 사람도 남자였고 직접 입으로 소리내어 욕을 하는 사람들도 남자였다.

관객석의 여자들은 단지 일어나 비명만 질렀을 뿐인데 이 비명이 괴물을 목격함에서가 아닌 '여자들의 현실'을 목도해버린 같은 '여자'로서의 두려움에 비롯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관객석에서 일어나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은 오로지 여자들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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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난 여기서 하나 더, 외모에 집착하는 이유가 오로지 남자들의 시선에 의해서만 추동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남'이 보는 '나'에 집착한다.

하지만 역시 이런 세상에 의해 여자들이 받는 피해가 더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난 다시 한번, 서브스턴스의 초강력함이 아쉬웠다. 너무 '대놓고' 남자들의 이미지를 '게걸적'이미지로 고정화시켜버리면 결국 본질은 온데간데 없고 또 다시 성별간 싸움으로밖에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서브스턴스에선 남자 인물들은 단지 영화 언저리에만 머무르며 기능적인 역할만 할 뿐인데, 난 딱 거기에서 그치면 좋지 않았나 싶다. 자극적으로 남자들에게 덧씌우는 이미지는 조금은 불필요했던걸지도,

그렇지만 나 역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이 영화의 감독이 여자인 걸 알고 적잖이 놀랐다.

이런 '미친 영화'에서 느껴지는 대담함은 자연스레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도.

그렇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말했던 것처럼 강렬한 영화는 주제의식이 명쾌해서 시원하다.

그리고 난 이런 병맛 영화가 좋다.

지금은 바디 호러가 누군가에겐 보기 꺼려지는 류의 창조의 산물일지라도 이런 도전들이 있어야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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