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한테 영향 많이 받은 듯, 근데 분위기만.
매우 기대하고 이른 아침부터 영화를 보러 나갔다.
진짜 솔직히 얘기하면 포스터가 너무 이뻐서 일단 처음에 혹했고, 대만 영화라 한번 더 오- 싶었다.
왕가위 느낌의 영화같아서 덥석 맘에 들어버린 건데 대만 영화 하면 보통 생각나는 통통 튀는 학창 시절
영화가 아니라 더 신선한 느낌. 거기에 제목도 밀레니엄 맘보라니,.. 왠지 힙해 보였다.
(매우 솔직히 말하는 중)
한국에선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숨겨진 명작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이수역 아트나인으로 향했고 첫 오프닝 시퀀스는 또 다른 멋있는 영화를 마주할 거라는 설렘을
더 증폭시켰다.
아니, 근데 이게 뭐야. 보고 나와서는 매우 실망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조심히 핸드폰을 켜서
다른 사람들의 별점을 확인했다. 이미 내 마음 속에 이 영화에 대한 별점은 정해져있던 상태라.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4를 준 걸 보고 '엥?' 싶었다.
내가 영화적 소양이 부족해 영화를 많이 본 평론가들이라면 알 수 있는 숨겨진 미학이 이 영화에 숨겨져 있을진 몰라도 나에겐 영, 아니올시다.
대만이 특히 대만의 역사와 결부된 스토리들이 많은 건 알고 있지만 역사적 맥락을 빼놓고서라도 관객을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깔려있는 역사적 맥락의 배경지식이 그 영화의 심연에 더 깊이 가닿는 정도는 차이 날 수 있을지라도.
왕가위의 영화나 패왕별희는 그때의 시대적배경을 고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절절하고 마음을 흔들어 놓는걸 보더라도 말이다.
밀레니엄 맘보는 내게 알맹이가 없이 느껴졌다. 마약과 술을 일삼는, 언뜻 봐도 곧 무너질 듯이 위험해보이는 여자 주인공. 매번 어둡고 담배연기로 뿌연 실내공간.
퇴폐적인 분위기를 내는데는 성공했고 그 분위기가 요즘 핀터레스트 느낌(?)의 사진이 되기에 충분할만큼
중화권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동양적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였지만 그걸로 전부였다고 해야 하나.
영화에선 등장인물들간 대화에 공백이 굉장히 길다. 그러나 난 그 공백동안 한 번도 숨 죽인 적이 없다.
화양연화에선 두 등장인물들의 말줄임표는 수백마디 그 이상의 기능을 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조마조마 하게 만들지만, 밀레니엄 맘보에서는 과장 좀 더 덧붙여서 뒤로 갈 수록 점점 더 지루해지기까지 했다.
왓챠에서 만점을 준 누군가의 영화평을 보니까 하오하오와 잭(두 남자 주인공)의 역할은 대만의 현실로 대표되는 비키(여자 주인공)가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공간이라고 했지만, 과연..?
난 전혀 두 주인공들에게서 기능적 역할조차 볼 수 없었다.
아마 단단한 서사가 자리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오하오와의 이야기부터 잭의 이야기까지 거창한 시작이 무색하게 맥아리가 없는 끝맺음은 나에게 물음표만 남겨줬다. 성기게 짜여있는 플롯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영화적 소양이 부족한 탓에 시선의 폭이 좁은건 지는 모르지만 나에겐 그저 왕가위 감독의 영화와 그 분위기에 감명받은 어떤 감독이 분위기만 어떻게 어떻게 따라잡았다, 그것 말고는 딱히..
아, 물론 서기 배우는 정말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웠다. Pretty가 아니라 Gorgeous 그 자체.
처음 본 배우였는데 역시 난 2000년대의 배우들이 좋은가봐 라고 다시 생각했다. 서기 배우를 알게 되었고 갈 일 없던 이수역에 자리하고 있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은희경 작가님의 옛날 책을 두 권이나 겟할 수 있었던 행운이 밀레니엄 맘보가 내게 준 거랄까..?